|
文대통령, 적극적 중재자 역할로 北대화 이끌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도중, 아버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은둔의 지도자였다. 그런 그를 외교무대에 끌어낸 건 문 대통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베를린선언부터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북측과의 대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냈다.
지난해 4월27일 남북 정상은 비핵화를 명문화한 판문점 선언을 채택하면서 한반도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거듭된 핵·미사일 실험으로 김정은 정권의 군사적 옵션이 고도화되던 상황에서 나온 유의미한 변화다. 이후 남북은 상호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일부를 서로 철수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크게 낮췄다.
북한의 비핵화 천명이 단지 말대말의 교환에 그친 것도 아니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역시 폐기 의사를 드러내면서 적극적으로 비핵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북핵 시설의 70% 이상이 몰려 있다고 평가받는 영변 핵시설 단지에 대한 폐기와 사찰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일단 북한 비핵화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긍정적 대목이다.
특히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원포인트로 열렸던 2차 남북 정상회담은 양 정상간 신뢰를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북미 간 신경전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좌초될 위기였으나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비공개로 만나 북미 정상회담의 무산을 막았다. 실용적으로 정상회담을 진행하자던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실례다.
한반도발 화해무드는 비단 남북관계 개선에만 그치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성과를 발판으로 북미 사이에도 훈풍이 불었다. 지난해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미국 정상과 북한 정상이 만나는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 연출됐다.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를 오가며 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한 것이 주효했다.
하노이 결렬 이후 교착 상태 지속..4차 남북 정상회담 과제
최근 문 대통령이 직접 김 위원장에게 4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직 이렇다할 응답을 하지 않고있다. 지난 11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의견 조율에는 나섰지만 이후 남북 대화가 부재 중인 상황이다. 북미 교착 상태가 남북 교류까지 막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미국 보수 세력에서 한미 동맹마저도 샛눈을 뜨고 지켜보는 눈총이 감지된다. 남한이 주도적으로 북미 관계 개선까지 나서는 것을 마뜩찮게 보는 시선이다. 북한 역시 한미 연합 훈련을 비난하면서 한미 동맹 사이에 틈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현재까지는 남북은 물론, 북미 대화 동력도 일정 수준 남아있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북미 교착 상태가 길어진다면 언제든 긴장도가 다시 오를 수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정부는 외교와 안보, 북한과 미국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핵 과학자와 기술자들까지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평화 TF’를 구성해 합의안 초안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이를 한미 공동안으로 완성시켜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미국 정권교체로 북미 수교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협상이 중단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며 설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