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정오 여의도 현대증권 15층 구내식당. 약 240석 규모의 식당은 이미 꽉찼고, 문 밖에도 50여명이 줄을 서 있다. 이 구내식당은 한 끼에 2500원으로 근처 식당의 절반가격이다. 지난해 주가급등으로 평균 연봉 1억원씩을 받았던 증권맨들. 올해엔 경기침체와 주가폭락으로 구내식당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현대푸드시스템의 김소영 점장은 "작년 이맘때는 한 끼 평균 350명 정도의 직원들이 식사를 했지만, 올해는 440명으로 25%나 급증했다"고 말했다.
고물가 시대에 직장인들은 어떤 생존전략으로 살고 있을까. 외부 식당 대신 '짬밥'으로 무시받던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복지혜택도 100% 이용한다.
◆여름 휴가는 회사 콘도에서
휴가 가서도 직장 상사 만날까 봐 꺼리던 회사 숙박시설은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다. CJ그룹 임직원 가운데 올해 6~7월에 회사 지원 콘도·펜션을 휴가 때 사용하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지난해보다 33%나 늘었다. 특히 1박에 5만~8만원대의 저렴한 콘도와 펜션이 인기다.
현대중공업이 임직원 20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올해 휴가비용 계획이 30만~50만원이라는 응답이 35%로 가장 많았다. 작년에는 50만~100만원(38%)이 가장 많았다.
외국 현지인 전화영어 강습에서는 비싼 미국·캐나다 출신 선생님보다 싼 필리핀 선생님의 인기가 높다. YBM시사폰 최선아 법인영업팀장은 "전화영어 직장인 단체 고객이 작년 대비 87% 늘어났다"며 "직장인의 95%가 캐나다 현지의 교사보다 값싼 필리핀 현지의 교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교사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비용은 캐나다보다 한달에 1만6000원이 싸다.
학원에 직접 나가 수강하는 것보다 값이 싼 온라인 강좌의 수강생도 크게 늘었다. 온라인 어학사이트인 'e4u사이버어학원'의 올해 상반기 직장인 수강생은 지난해보다 30%나 많아졌다. 직장인들은 또 정부가 학원비를 1년에 100만원, 5년간 300만원까지 지원하는 '근로자 수강지원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택시비도 영수증 처리
업무상 택시를 탈 때 영수증을 챙겨 회사에서 보전을 받는 직장인들도 크게 늘었다. 서울의 택시기사 장모(55)씨는 "작년에는 영수증 청구하는 직장인이 전체의 2%도 안 됐다"며 "그러나 요즘은 작년보다 10배는 많아졌다"고 했다. 모범택시를 운행하는 신이균(48)씨는 "직장인들이 야근을 한 후 퇴근할 때 법인카드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오토바이 출퇴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화성자동차학원의 조광현 부원장은 "125㏄ 이상 오토바이를 몰 수 있는 '2종 소형 면허'를 따려는 수강생들이 올해 초에만 해도 20명에 불과했으나 이달에는 50명"이라며 "대부분 30대 직장인들"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광화문 K은행 콜센터 구내식당.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S건설 직원들이 섞여 밥을 먹고 있다. S건설 관계자는 "원래 회사 주변에서 쓸 수 있는 5000원짜리 식권을 받았으나 물가 폭등으로 이 돈으로는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게 되면서 7월부터 K은행 구내식당을 함께 쓰기로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점심식사가 예전처럼 다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3500원에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다.
현대증권 최희영(여·29)씨는 "주위에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는 동료들도 늘었다"며 "요즘엔 밥 먹고 커피숍에 들르는 일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양주? 그냥 소주 마셔
서울 시청역 인근의 M호프집 사장은 "작년과 달리 올해는 비싼 양주는 안 팔리고 소주만 팔린다"고 말했다. 광화문 W메밀국수의 한 점원은 "예전엔 저녁식사를 하면서 반주로 술을 먹어도 테이블당 3~4병씩 소주를 시켰지만, 요즘엔 한 병도 잘 안 시킨다"고 했다.
은행원 서모(27)씨는 "작년에는 1주일에 3~4번 정도 회식을 했는데, 요즘엔 2주에 한 번 정도 한다"며 "작년엔 고깃집에도 갔는데 요즘엔 회사 근처 부대찌개 집에 주로 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