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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같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선거에 거리를 두겠다는 점에서는 십분 이해가 가능하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 후퇴한 민주주의를 보는 청와대의 시각은 언급이 없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승리하며 단숨에 유력 대권 주자로 급부상한 이낙연 당선자는 말을 번복했다. 비례 위성정당 창당에 반대하다가 결국 같은 짓을 했고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 동안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고 전해졌다.
그 과정마저도 치졸했다. 이미 국민에게 일정 부분 권한을 위임받은 여당이, 책임을 피해보겠다며 ‘전당원 투표’라는 꼼수를 썼다. 20대 내내 ‘식물국회’라고 욕을 먹더니 제 앞가림도 남의 손에 떠맡기는, 정치의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위를 자행했다.
문 대통령이 받아든 ‘무거운 책임감’ 안에 후퇴한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도 포함돼 있는지 의문이다. 정치적 다양성을 홀랑 불태워버린 21대 국회에 새로운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릴 의무가 문 대통령과 청와대에 있다. 승리했지만 막중한 정치적 부담감이 짓누르는 승리다.
21대 국회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응당 논의해야만 한다. 이낙연 당선자가 총선 승리 직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완벽한 실패에 대해 “솔직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에 슬몃 기대감도 생긴다.
그러나 역대로 국회는 선거에 닥쳐서야 번갯불에 콩 볶듯 선거법을 매만졌다. 이 오랜 관성을 고려하면 국회가 제 머리를 깎을 수 있을지 회의감이 앞선다. 일러야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테이블에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했다. 비단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다. 김영삼 정부도 그랬고 노무현 정부도 그랬다. 이명박 정부 역시 정권 심판론에서 자유로웠다. 그러나 이들 정권의 마지막을 상기해보면 21대 총선 결과는 ‘독이 든 성배’다.
지난 2018년 6월18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했던 당시에도 문 대통령은 “굉장히 두려운 일”이라며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그런 정도의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선거에서의 승리가 다음 선거에서 아주 냉엄한 심판으로 돌아왔던 경험을 우리는 많이 갖고 있다”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도 있었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선거 4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청와대와 여당이 가장 먼저 가슴에 새겨야할 감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