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투항한 그 '곰장어'에 할 말 있다

한일 관계 '생선'으로 엮어
한국산 갯장어는 교토서 최고급 대우
일본산 먹장어 부산 포차 명물돼
일제강점기부터 '남획'…씨마른 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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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피시로드, 흥남에서 교토까지
다케쿠니 도모야스|368쪽|따비
  • 등록 2014-12-18 오전 6:44:00

    수정 2014-12-18 오전 7: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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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몸길이 50∼60㎝. 장어를 닮았다. 주로 구이로 요리한다. 잘게 썰어 양념으로 밑간을 하고 양파와 함께 볶는다.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먹장어 얘기다. 좀 생소한가. 곰장어라면 친숙할 게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포장마차 단골 안줏감이라고 해서 토종 한국산이려니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부산 자갈치시장으로 들어서는 활어차에 실린 먹장어의 대부분은 일본 시네마현에서 공수된 거다. 일본인이 좋아해 생산량이 많은 거라고? 천만에. 생선 좋아하는 일본인도 먹장어엔 관심이 없다. 열심히 잡아서 한국으로 실어나를 뿐이다.

해마다 7월 일본 교토에선 축제가 열린다. 갯장어축제다. 당연히 주빈은 갯장어. 그중에서도 고성·사량도·여수 등지서 잡아온 한국산이 인기다. 일본산보다 서너 배는 비싸다. 뼈를 발라내고 잘게 칼집을 낸 갯장어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바로 얼음물에 투하, 살을 탱탱하게 만든 요리를 즐긴다. 갯장어 오토시다. 한국산은 이 요리의 고급품에 쓰인다. 장어덮밥을 덮는 여수산은 최고가에 팔린다. 사실 갯장어는 한국서 잘 잡히지도, 먹지도 않는 생선이었다. 최소한 한일 국교 회복 전까진. 그런데 일본수출이 늘면서 어획량도 따라 늘었다. 여름보양식으로 등장하는 횟수도 덩달아 늘고.

한국과 일본의 복잡한 관계가 생선으로 엮였다. 말 그대로 생선교류의 역사다. 발품 팔품 다 팔고 나선 이는 일본서 현대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수산물 지형도 한 장 들고 양국의 방대한 지상과 물속을 헤집었다. 단 하루에 축적된 얘깃거리가 아니니 역사가 만들어졌을 터. 18세기 말부터 본격화한 한일어업사를 바탕 삼아 그 한가운데 물고기를 풀어놨다. 그 그물망에 걸린 물고기가 비단 먹장어란 본명의 곰장어와 갯장어뿐이겠는가. 붕장어, 넙치, 피조개, 새조개, 바지락 등이 부산서 시모노세키로 건너갔고 가리비, 멍게, 해삼 등이 다시 건너왔다. 수산물이 다시 그린 한일 국경이다.

▲일제강점기가 뒤바꾼 물고기 운명

일본인 저자가 유독 마음을 쓴 건 자국의 식민통치가 뒤집은 물고기의 운명이다. 곰장어가 특히 그렇다. 일본선 먹지 않은 이 생선이 한국의 대표 서민요리가 된 배경찾기에 골몰하던 그가 찾은 답은 ‘식민지수탈의 산물’이란 것. 일제강점기 부산에 곰장어가죽공장이 들어섰는데 생산된 가죽은 당연히 일본에 보내졌고 버려진 고기는 배곯던 서민 차지가 됐다는 거다. 광복 후엔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모여든 피난민이 자갈치시장의 대명사로 만들었단다.

곰장어에 비하면 일본으로 진출한 갯장어는 그나마 대접을 받은 셈이다. 교토 중앙시장에서 연간 거래되는 갯장어는 25% 이상이 한국산이니. 기름이 돌고 뼈가 부드러워 맛은 물론 손질하기도 수월하다는 찬사를 늘 받았다.

▲‘곰장어볶음’ 아니다 ‘곰장어구이’다

역사에 뒤흔들린 물고기의 운명에 대한 측은지심만은 아니다. 섬세함, 편하게 바꿔 말해 ‘살아 있는 디테일’은 책이 지닌 또 다른 미덕이다. 가령 이런 식. 저자가 부산에서 소주 한잔과 곁들여 맛봤다는 곰장어구이가 왜 볶음이 아니고 구이냐는 것. 같은 조리법인 낙지는 볶음이라 하면서 곰장어는 굳이 구이라니. 저자가 들인 공은 여기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헌을 뒤져보니 이런 내용이 있더란다. 처음엔 정말 구이였다. 양념에 재서 꼬치로 굽거나 석쇠에 구워냈다. 그러다 문득 살에서 떨어지는 지방분에 눈이 가게 됐다. 철판이나 알루미늄 포일은 그 과정서 고안된 조리틀이다. 그렇다고 이름까지 바꿔 버릴 이유는 없었던 거고.

▲명태가 ‘멘타이’에 먹힌 사연

한일 관계가 늘 그렇듯 지독한 악연도 있다. 그 중심에는 ‘정치색 짙은’ 명태가 자리한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국가대표 생선인 명태의 운명까지 좌우하게 된 거다.

명란 외에 명태를 먹는 일이 거의 없는 일본은 오로지 조선인에게 팔고자 ‘멘타이’(명태의 일본명)의 남획을 이어갔다. 19세기 말까지 명태잡이는 조선인의 독무대였다. 작은 배 한 척 띄어도 소비량은 충분히 건졌다. 하지만 일본이 달겨들자 상황은 돌변했다. 1942년에 이미 1920년 어획량의 3배를 넘어섰다. 조선 인구는 고작 1.3배 늘어났는데. 게다가 날이 갈수록 발달한 어업기술과 자본을 무기로 한 일본의 기선저인망이 명태를 이젠 한국선 잡지 못하는 생선으로 만들어버렸다. 명태 한 마리 얻으려면 러시아와 일본에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가 된 거다. 이쯤에 붙은 저자의 탄식은 명태의 운명만은 아니었다. ‘대랑 생산해 대량 소비하는’ 자본주의 개발이데올로기 그 자체였다.

▲“물고기는 자유롭다”…국경은 사람이 그은 것

‘물고기는 자유롭다’가 저자의 모토다. 그 자유에 선을 그은 건 사람이란 얘기다. ‘일본산’ ‘한국산’ 따위를 구별하는 데 집착하는 사람이란 존재는 태어나자마자 국적으로 정체성을 얻었으니 세상이 다 그런 줄 안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물고기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그냥 ‘하나의 바다’가 아니냐고 했다. 이미 수천년 전부터 이어온 왕래. 그것을 굳이 ‘한일 교류’에 끼워 맞춰야 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는 행간이 읽힌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거 앞에서 스스로를 겸허하게 세우는 일.” 물고기에 둘러싸인 사람이야기는 결국 반성과 성찰로 갈무리했다. 화해나 소통은 열 길 물속 사정이 아니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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