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광주 100년의 시간…한편의 뮤지컬같은 버스여행

광주시티투어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
장소와 공연을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시티투어
일제강점기 1930년대의 '양림동골목'
아픈 현대사 새겨진 1980년대의 '5.18민주광장'
광주의 미래를 비추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등록 2018-11-02 오전 5:00:00

    수정 2018-11-02 오전 5:00:00

문화체육관광부와 광주광역시가 오랜 고심끝에 내놓은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 여타 도시가 시티투어버스를 나열식으로 관광지를 소개했다면,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는 장소와 공연을 결합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취했다. 위 사진은 광주의 1930년대를 잘 보존하고 있는 양림동에 있는 양림살롱에서 투어 안내원이자, 공연의 여주인공을 맡은 ‘나비’가 ‘오빠는 풍각쟁이’를 간드러지게 부르며 관광객들을 1930년대로 이끌고 있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광주는 ‘광역시’라는 행정 구역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두 글자는 이미 한 단어가 가질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맥락과 집단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5·18민주항쟁이다. 물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다. 하지만 광주라는 도시는 그 5월의 기억 안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끊임없이 수많은 기억이 도심 곳곳에 새겨져 있다. 그 기억들을 찾아 광주로 향한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광주시티투어, ‘광주 100년 이야기’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1930년대의 광주와 역사, 그리고 미래를 향한 문화중심 도시, 광주의 100년을 둘러보는 여정이다.

광주 스토리 시티투어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


◇광주 100년을 이야기와 공연으로 풀어내다

이번 여행은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 즉 ‘스토리 시티투어버스’다. 여타 도시가 주요 관광지를 나열식으로 소개한다면, 광주시티투어는 핵심 관광지의 이야기를 연극과 음악 등으로 융합했다. 이른바 ‘장소와 공연’을 결합한 시티투어인 셈이다. 이야기 중심인 장소는 크게 세 곳이다. 1930년대의 ‘양림동골목’, 1980년대의 ‘185·18민주광장(이하 오월광장)’, 2030년대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여행은 100년의 세월을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각 시대 청년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광주가 가진 구석구석의 숨겨진 이야기와 매력적인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비친다.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의 여 주인공 ‘나비’와 광주남구평화의소녀상


여행을 이끄는 중심 인물은 ‘나비’와 ‘폴’이다. ‘나비’는 여행을 이끄는 ‘내비게이터’이자, 공연을 이끌어가는 여자 주인공이다. ‘폴’은 광주의 1930년대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두 인물을 ‘정율성’(1914~1976), ‘윤상원’(1950~1980)을 대변하는 남자 주인공이다. 중국 혁명 음악의 대부로 추앙받고 있는 정율성은 1914년 양림동에서 태어나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벌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연안송’, ‘팔로군 행진곡’, ‘연수요’ 등을 작곡했다. 1980년대를 대변하는 윤상원은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인물이다. 하지만 더 크게 본다면 ‘폴’은 시대별 청년을 대변한다. ‘나비’와 ‘폴’이라는 가상 인물을 매개로 여행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렇게 광주는 1980년대에서 벗어나 100년의 세월 속에서 재탄생한다.

광주 스토리 시티투어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 안내원인 ‘나비’가 여행객들에게 관광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 광주로 향하다.

여행의 시작점은 ‘광주종합버스터미널’(유스퀘어). 목적지는 ‘양림동’이다. 버스는 2018년에서 1930년대로 타임머신을 탄 듯 빠르게 흘러간다.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해태타이거즈의 홈경기장인 ‘무등경기장’, 그 옆으로 기아타이거즈의 홈경기장인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를 스친다. 이어 버스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광주천’을 따라 간다. 본래 이름은 ‘조탄강’으로, 지금보다 강폭이 5배나 넓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직강공사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이어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광주극장’. 1933년 들어선 이 극장은 항일 문화운동을 일으켰던 곳이다. 광주극장을 지나면 ‘광주제일고’다. 이 학교는 3·1 운동 이후 일어난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발상지다. 지금은 야구명문 ‘광주일고’로 더 유명한 학교다. 이곳의 전신은 일제강점기 시절 학생독립운동의 주축이었던 ‘광주고등보통학교’. 통학기차 안에서 일본인 학생들의 시비에 맞서 싸운 것이 계기가 돼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독립운동이었다.

버스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양동시장으로 향한다. 호남의 대표시장으로, ‘손 큰 시장’으로 불릴 만큼 온갖 물산들이 이곳에서 팔려나간다. 5·18 학생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대인시장의 상인들과 주먹밥과 음료수 등을 지원하며 시민군들을 격려하기도 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광주 100년 버스’의 주요 투어코스인 양림동골목


◇1930년 암울했던 광주의 모습에 멈춰서다

버스는 1930년 광주(양림동)에 멈춰선다. 1930년대의 양림동의 골목을 걷는 코스다. 첫 장소는 양림살롱 여행자라운지. 원래는 광주와 양림동을 여행하는 이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지만,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에서는 무대로 변신한다. 살롱은 1930년대풍의 경쾌한 음악소리와 함께 여행객들의 시계태엽을 빠르게 1930년대로 이끈다. 안내원 ‘나비’가 어느새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가수’로 변신해 ‘오빠는 풍각쟁이야’를 간드러지게 불러낸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공연이 끝나면 나비는 여행객을 이끌고 이장우 가옥으로 향한다. 이장우 가옥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공간과 광주 최고의 부자들이 살았던 공간을 분리하는 기준이 되는 집이었다. 1899년에 지은 전통가옥으로 일자형이 주를 이루는 남부지방의 가옥과 달리 한양의 가옥처럼 ‘ㄱ’자 구조다. 나름대로 부를 과시하고 멋을 부린 것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일본식 정원과 사랑채, 멋스러운 안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당에는 큰 연못이 있고, 수령 100년이 넘은 은행나무도 있다. 주중 낮 시간대에만 개방한다.

1899년에 지어진 양림동 이장우가옥


이장우 가옥에서 최승효가옥도 지척이다. 1920년 최상현이 지어 일본 요정으로 운영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고 한편으로는 본채에 비밀 다락을 두어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현재는 설치미술가 최인준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광주 최초의 교회 양림교회는 1904년 미국 선교사 배유지가 세웠다. 현재의 건물은 1954년에 지은 것으로, 양림동 여행에서 이정표 역할을 한다. 교회 바로 앞에는 오웬기념각(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이 있다. 1914년 선교사로 활동하다 순교한 ‘오웬’(1867~1909)과 그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당시 유교적 관습에 따라 남녀가 들어가는 문이 달랐기에 출입문이 2개다. 설교단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 구조다. 개화기에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곳에서 열리며 근대문화의 전당으로 사용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 ‘각시탈’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오웬기념관 앞에서 공연중인 ‘나비’와 ‘폴’


◇아픔을 딛고 다시 미래를 이야기하다

매일 5시 18분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차임벨소리로 흘러나오는 오월광장 ‘시계탑’
양림동에서 다시 타임머신 버스를 타고 5·18 민주화운동의 중심지 ‘오월광장’으로 향한다. 5·18 최후의 격전지였던 구 전남도청건물과 군부의 헬기사격 총탄증거가 남아있는 ‘전일빌딩’, 시민의 시신을 임시 안치했던 ‘상무관’, 매일 5시 18분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차임벨소리로 흘러나오는 ‘시계탑’, 민주인사들의 얼을 담아 세운 ‘민주의 종각’까지 곳곳에서 5월 정신의 느낄 수 있다.

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아시아문화전당이다. 광주가 아시아의 문화중심 도시로 발돋움 하는 현장이다. 바로 2030년대의 광주가 그리는 모습이다. 이 건물의 설계 콘셉트도 ‘빛의 숲’이다. 빛으로 격동의 한 시대를 거쳐온 광주를 다잡는다는 의미다. 폴은 이렇게 외치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되기를 희망하며 미래로 달려가고 있소. 광주의 역사와 문화가 아시아의 정신이 될 수 있도록, 빛의 숲을 더욱더 환하게 밝혀줄 한 그루 나무가 되어주길 그대들에게 희망하는 바이오. 그럼 이만 나는 물러가겠소. 모두의 삶에 빛이 있으라.”

◇여행메모

△여행팁= ‘광주 100년 이야기 버스’는 매주 금요일 야간 1회, 토요일 오전과 오후 각 1회 등 총 3회 운영한다. 이용권은 1만 원이다. 공식 누리집(www.gjcitytour.com)에서 사전에 예약하거나 현장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운영 경로는 송정역에서 출발해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양림동(도보여행), 오월 광장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보여행)을 거쳐 다시 광주종합버스터미널을 들른 후에 송정역에서 마무리한다.

5.18 기념공원 내 새겨진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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