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란의 컬러인문학]⑧주유청강(舟遊淸江)

  • 등록 2016-04-15 오전 7:00:00

    수정 2016-04-15 오전 7:00:00

[김향란 삼화페인트 컬러디자인센터장]
일주일전 그리고 그제 봄비가 밤새 대지를 적셨다. 꽃망울을 피워 곱게 자란 꽃잎들이 바람결에 떨어져 아파트 화단 위를 온통 하얗게 만들어 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관악산이 바로 지척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변해가는 자연의 온갖 색채들을 뽐내기라도 하듯 보여주는 곳이다.

이삿날 집 주변 마트 주인이 의아해 하며 어찌 젊은 사람이 이곳에 이사왔느냐고 할정도로 도심이지만 자연과 벗하며 살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러나 난 그 무엇보다도 자연이 주는 혜택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기에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곳을 택했다. 봄이면 하얀 눈이라도 내린듯 산을 덮어버리는 벗꽂과 목련, 여름이면 청록의 나뭇잎들이 싱싱한 자태를 뽐내며 당당히 맞서고, 가을이면 온갖 색의 단풍잎들로 붉게 물들고, 겨울이면 하늘에서 그야말로 흰눈이 내려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주는 이곳이 도시숲의 빽빽함과 비교할 수 있을까?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첩에 실린 주유청강(舟遊淸江)은 맑은 하늘에 시원하게 부는 강바람을 느끼며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이 시나브로 자연에 취하고 여색에 빠지는 광경을 표현했다. 도시숲에 살고 있는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느낄 수 없는 자연적 감성과 색을 표현한다.

지난 4일은 청명(淸明)이고, 5일은 한식(寒食)이었다. 봄이 되어 하늘은 맑고 화창해 나무를 심기에 적당하니 농사를 준비하거나, 못자리판을 만들고 혹은 씨를 뿌리기에 아주 좋은 날로 한해 농사를 위한 시작을 알리는 시기가 된다.

한식은 중국으로부터 시작됐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들이 냉절 또는 숙식이라 불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유래되었다 전해진다. 이유는 충신 개자추라는 자가 공자 중이(重耳)가 망명시절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바칠 정도로 충성을 다했는데 중이가 진나라 문공(文公)이 되어 자신의 충심을 알지 못하자 부끄럽게 생각해 어머니와 함께 깊은 산중으로 숨어버렸다. 문공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개자추를 찾아갔으나 나오지 않자 산에 불을 질러 그를 나오게 하려 하였지만,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버드나무 밑에서 어머니와 서로 껴안고 불에 타 죽었다. 이후로 그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이날은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겨 한식(寒食)이라 정하고 성묘토록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조선시대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구멍을 뚫어 삼으로 꼬아 만든 줄을 꿰어 양쪽에서 서로 톱질하듯이 잡아당겨 불을 붙여 임금께 올리고 불을 숭배토록 하였으며, 대신들에게도 나누어주어 그 정신을 계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윤복의 주유청강은 맑고 화창한 날에 나무를 심고 씨앗을 뿌리고 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예찬을 말해준다. 봄은 사랑을 싹튀우기에 좋은 계절로 핑크빛 로맨스를 자극하는 유혹적인 계절색을 지니고 있기에 많은 솔로들이 몸부림치는 이유다.

허리춤에 하얀 띠를 두른 선비를 보니, 유혹에 못이겨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쫓아나온 어정쩡한 폼새가 웃음을 자아낸다. 조선시대에는 도포의 허리띠 색으로 관직유무를 알 수 있었는데 당상관 이상은 자주색이나 붉은색의 띠를 두르고 당하관 이하는 파란색을, 관직이 없는 하급 공무원인 경우 검정을 썼다고 한다. 하얀띠를 두르고 있는 상중인 두명의 사내와 검정띠를 두르고 기생에게 수작을 걸고 있는 한량은 관직보다는 대단한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추측될 뿐이다.

병풍처럼 배경을 둘러싸고 있는 암벽과 초록의 나뭇잎을 보니 화창한 봄날 여색에 취하고 싶은 한량들의 격없는 행동들이 재미있다. 암벽 사이로 하얀 빛이 보이고, 그 아래로 초록의 새순들이 바위틈을 헤집고 반대편의 질경이는 생명력을 찾아가며 왼쪽 연두색 잎들이 촉촉한 생기를 머금으며 계절이 주는 약동을 고조시킨다. 다시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리면 그곳에 있는 사내와 여인들에게로 집중되는데, 암벽 사이로 보이는 빛이 그곳을 향하고, 진하지 않게 담담하게 표현한 어두움은 그 의미에 비해 큰 무게감을 두지 않은 듯 입체적 질감만 느껴진다.

뱃머리에 앉아 옥색치마를 입고 생황을 불고 있는 기생에게 관망하듯 쳐다보는 상중의 한량은 같은 색의 상의를 입어 그 둘의 관계성이 엿보인다. 한층 달아오른듯 홍조를 띄고 한손으로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올린 기생의 붉은 저고리 고름과 사내의 갓끈이 서로 매치되어 연결되고 있다. 강물에 손을 담그며 장난질을 하는 여인의 치맛자락과 살짝 늘어뜨린 천막의 청록이 한때 어우러져 청명한 봄날의 유유자적함을 단아하고 깔끔한 색채와 필선으로 욕망의 허세를 조롱하는 듯하다. 풍자적 비판을 섬세한 필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신윤복의 냉철함을 보며, 온갖 정당색깔론으로 이어지고 있는 각 정당의 상징색과 의미 그리고 비전이 비교가 되는 것은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함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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