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EF2015]노소영 관장 "건강한 소통이 행복의 첩경"

10월 20일 세계여성경제포럼서 '감정로봇' 시현하며 강의
인간은 감정의 영향 많이 받아…“감정 소통 안 되면 괴롭고 피곤해”
'여성·교육' 새로운 관심사…“새로운 학교 만들어 보고 싶어”
  • 등록 2015-09-24 오전 3:05:00

    수정 2015-09-24 오전 10:26:09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관장은 “몸과 마음이 합해 생기는 감정이 밝고 건강하게 소통되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첩경”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정욱 기자
[이데일리 임성영 기자] 커피숍 안에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앉아 있다. 기호에 맞는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 이들은 어느 순간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스마트폰만 본다. 남자는 스포츠 기사를 읽고, 여자는 패션 트렌드를 파악하고 있다.

여느 커피숍에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이다. 어느 순간부터 함께하는 시간조차 공유하지 않는 현대인이 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언제라도 연락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건 왜 일까.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관장은 현대인의 소통 부족을 풀어줄 현실적인 대안으로 감정로봇을 제시한다. 노 관장은 오는 10월 20일 이데일리가 개최하는 ‘세계여성경제포럼 2015’에서 감정로봇을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인간은 감정의 영향 많이 받아…“감정 소통 안 되면 괴롭고 피곤해”

아트센터 나비는 지난달 ‘나비 해카톤<하트봇(H.E.Art BOT)>’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해카톤은 ‘해킹하다(Hack)’와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다. 한정된 시간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실행에 옮기는 활동을 말한다. ‘따뜻한 마음(Heart)’과 ‘로봇(robot)’을 합성한 하트봇으로 주제를 정했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고 늘 내 편에 서서 욕을 대신 해주는 로봇이 있다면 어떨까’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의 감정을 연결할 수는 없을까’와 같은 아이디어가 감정로봇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욕쟁이 할머니 로봇은 “욕해줘요”라는 말에 “이런 시베리아 벌판에 얼어 죽을 X 같으니”라고 반응한다. 평소 욕을 잘 못하는 부부의 합작품이다.

직장에 있는 남편이 오뚝이처럼 생긴 로봇을 쓰다듬으면 집에 있는 짝꿍 로봇이 이에 반응해 몸을 흔들고 빛을 뿜는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녀나 친구, 연인에게도 유용하다. 서로의 감정을 연결해주는 원격 커뮤니케이션 로봇은 임신한 아내를 걱정한 남편이 개발했다.

△지난달 나비 해카톤<하트봇(H.E.Art BOT)>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우리에그’. 사진=아트센터 나비 제공
감정이 없는 로봇을 이용해 사람을 연결한다는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노 관장이 이전부터 인간의 예술적 감성과 기술의 무한한 변화, 생산의 힘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문화에 주목한 결과다. 노 관장은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감정의 캐리어’라고 표현하며 소통 자체를 지향하는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 덕분에 성공했다”고 평했다.

2000년부터 아트센터 나비를 이끈 노 관장은 다양한 실험을 했다. 실험을 통해 ‘사람이 원하는 것은 감정의 소통’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대다수 사람은 감정보다 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감정을 소통하지 못하면 괴롭고 피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몸과 마음이 합해 생기는 감정, 이 감정이 밝고 건강하게 소통되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첩경”이라고 말했다.

◇‘여성·교육’이 새로운 관심사…“새로운 학교 만들어보고 싶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 전시공간에서 감정 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정욱 기자
노 관장은 밖에서 깐깐한 아트센터 나비의 책임자면서도 집에선 1남 2녀를 둔 워킹맘이다. 두 딸 아이가 자라면서 여성과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는 “시대가 바뀌면서 세상을 이끄는 걸출한 여성 리더가 탄생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여성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물음에 그는 “아직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상대적으로 먹고 살기가 훨씬 나은 나도 힘든데 일반인들의 고민은 상당할 것”이라며 공감을 표했다. 그는 “되돌아보면 가치 있는 일은 항상 힘들었다”며 “주변을 봐도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여성이 나중에 리더로서 더욱 빛을 발했다”고 강조했다.

교육에 대한 관심도 자식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 막내아들은 대학 입시를 앞두고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들은 “가치를 가르쳐 주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고 노 관장은 말문이 막혔다. 당시 노 관장은 아들에게 “그런 곳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노 관장은 자녀 셋을 키우다 보니 한국의 교육현실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교육은 학생들이 살아가야 할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현재 한국의 교육은 교육기관을 위한 교육”이라고 꼬집었다. 교육의 문제로 피해를 보는 건 젊은이들이며 그런 젊은이들이 이끌어갈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라며 바스키아(앤디 워홀과 어깨를 나란히 한 팝아트 계열의 천재적인 자유구상화가) 얘기를 꺼냈다. 삶의 고통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표현한 바스키아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서 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노 관장은 “고통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며 “고통을 직면해 딛고 일어설 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통은 부끄러운 것이며 숨겨야 한다’고 가르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노 관장은 “혼자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 시대에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아트센터 나비는 상상제작실·꼬마천재 다빈치스쿨·캡스톤디자인캠프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자녀를 독립적으로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아이들이 하는 대로 놔뒀다”라는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스스로 자율 의지에 맡길수록 아이는 더욱 독립적으로 컸으며 그만큼 자신과의 유대관계도 깊어지더라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본사 4층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 전경. 사진=아트센터 나비 제공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서울대 공대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가 윌리엄 앤 매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스탠퍼드 대학원에선 교육학 석사를 취득했다. 그녀가 직업의식을 갖고 뛰어든 분야는 디지털아트다. 대전세계엑스포 조직위원회 아트 앤 테크놀로지 기획팀장으로 일하며 컴퓨터 예술분야를 처음 접했다. 2000년엔 국내 최초의 디지털아트 전문 기관인 아트센터 나비를 개관했다. 처음엔 전문가에게 운영을 맡길 생각이었으나 정작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왕 손을 대면 제대로 해야 하는 성격도 한몫했다. 예술을 가까이하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자 흥미로움이 더해졌고 결국 몰두하게 됐다. 그동안 수행한 프로젝트들은 그가 대통령의 딸, 재벌 사모님이라는 호칭보다는 디지털아트의 선구자임을 잘 보여준다. 그는 현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겸임교수, 서강대 지식융합학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초빙교수,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선임이사, 중국 칭화대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달 나비 해카톤<하트봇(H.E.Art BOT)>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그랜봇’. 사진=아트센터 나비 제공
◇아트센터 나비가 기획한 프로젝트…2000년 12월 기획한 텔레마틱 이벤트‘니취’는 텔레마틱아트(통신망 기술을 이용해 대중의 참여를 확장하는 예술) 창시자인 로이 애스콧과 디자이너 안상수, 조각가 금누리, 생물학자 최재천, 건축가 조택연이 함께 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아트나비(Artnabi)라는 3차원 공간을 구축해 참가자들이 인간을 제외한 다양한 생명체들로 형상화된 아바타로 등장한다. 아바타를 통해 참여자들은 인간이 아닌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2001년에 진행된 ‘꿈나비2001’은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와 친구가 되는 이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디지털과 예술, 자연의 감수성을 조화롭게 체험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 외 아트센터 나비는 개관 이후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지금도 나비 해카톤<하트봇(H.E.Art BOT)>을 포함한 2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 연말에는 로봇파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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