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지난 27일 찾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택가의 1950년대 지은 한옥. 관리 상태와 건축 구조가 뛰어나서 보존할 가치를 인정받은 서울시 지정 한옥이었다. 이날 이 집에서는 한국흰개미대책협회 직원들이 분주하게 흰개미 방제 작업에 분주했다. 집주인은 “60년 넘게 여기 사는 동안 흰개미가 나온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 27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택가 한옥집에서 한국흰개미대책협회 직원이 흰개미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전재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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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집을 둘러보니 외벽 소나무 기둥은 흰개미가 갉아먹어 밑동 일부가 부석거렸다. 실내로 들어가 보니 화장실 주변 마루에서 흰개미가 서식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늘지고, 바람이 통하지 않아, 습한 데를 중심으로 피해가 발생했다. 흙에서 사는 한국 흰개미가 흙 밖으로 나오는 시기는 매년 번식기(4~5월)와 장마 시즌(6월)에 집중된다. 이맘때는 목재가 습기를 머금게 되고, 축축해진 목재는 흰개미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이기 때문이다.
| (사진=환경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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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개미의 습격을 받은 목조 건축물은 인간의 안전을 위협한다. 2022년 6월 장마철 충남 공주에 내린 집중호우로 주택이 붕괴한 것이 사례다. 무너진 지붕 서까래에서 발견된 흰개미 식해(곤충이 나무를 갉아먹음) 흔적이 붕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사고로 90대 노인이 안타깝게 숨졌다.
관건은 서울에서 보고된 흰개미 피해가 최근 수년 새 몰린다는 점이다. 한국흰개미대책협회에 접수된 서울 종로구 지역 흰개미 방제 요청 건수는 최근 5년 사이 이뤄진 게 사실상 전부라고 한다. 앞서 한옥 집주인의 “60년 만에 처음 흰개미를 봤다”는 얘기와 비슷한 맥락이다. 통상 남부지방에 서식하던 한국 흰개미가 중부지방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기온 상승이 원인으로 꼽힌다. 과일 사과의 주요 산지가 과거 경상도에서 현재 강원도까지 북상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 27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택가 한옥집의 기둥이 흰개미 피해를 입은 모습.(사진=전재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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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집에서 흰개미를 발견하면 사후 대응으로서 완벽하게 박멸하는 것이 대응책이다. 이때 집주인이 자체적으로 방제하려다가는 되레 일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시중에서 파는 일반 살충제를 뿌리면 눈에 보이는 흰개미는 즉사하지만, 살아남은 개체는 위협을 느끼고 더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게 흰개미 습성이다. 흰개미 전용 방제액을 사용해 살충 성분을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많은 개체에 전파시켜 박멸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길게는 수년 뒤에야 흰개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동안 주택은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은 뒤다.
사전 대응은 목조 건축물을 지으면서 방제 처리를 하는 것이다. 목재와 토양 모두 방제 처리하면 적어도 5년은 흰개미 출몰을 억제하고, 이후 2~3년 간격으로 추가 방제해 관리하면 된다고 한다. 다만 사전 방제는 의무 사항은 아니고 토지 소유주 의지에 달렸다. 목조 건축물을 보존하려면 ‘의지’를 ‘의무’로 바꾸고, 지자체가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앞서 흰개미 피해를 먼저 겪은 이웃 일본에서는 목조 건축물을 신축하려면 흰개미 방제 작업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법률로써 강제한다.
사실 개인이 기후위기로 서식지를 옮겨온 흰개미에 대응하기는 버겁다. 이날 방제 작업이 이뤄진 한옥의 바로 옆집도 한옥이었는데, 밖에서 육안으로 보더라도 목재에 흰개미 식해 흔적이 상당했다. 이 집 흰개미를 방제하더라도 옆집으로 흰개미가 옮겨가는 것은 사실상 정해진 수순이라고 한다.
고남철 한국흰개미대책협회장은 “방제 작업은 집집마다가 아니라 북촌이나 서촌 등 목조 건축물 밀집 지역을 대상으로 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인간 영역으로 들어온 흰개미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려면 지자체와 정부가 나서 제도를 마련하고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