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눈] 누가 아마존을 막을쏘냐

처음부터 원대한 목표..결국 유통공룡으로
제2본사 유치전에 238개 도시 뛰어들어
알칸사州 월마트 눈치보여 차마 제안서 못내
베조스 앞에 줄선 美도시 눈물겨운 구애
  • 등록 2017-11-01 오전 5:00:07

    수정 2017-11-01 오전 5:00:07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겸 최고경영자. /AFP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원래 이름은 ‘카다브라(Cadabra)’였다. 우리 식으로 치면 “수리수리 마수리”같은 의미의 영미식 주문인 “아브라카다브라”에서 따온 이름이다.

제프 베조스는 카다브라란 회사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다브라를 처음 들은 사람들은 “뭐? 카다벌(Cadaver·시체)이라고?”라며 놀리기 일쑤였다.

영어사전을 A부터 한 장씩 넘기던 베조스는 아마존이란 단어를 발견하고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아마존은 그냥 세계에서 가장 큰 게 아니에요. 두 번째로 가장 큰 강보다 몇 배나 더 크잖아요. 다른 강들과는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베조스의 꿈은 처음부터 원대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그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마존에 모든 것을 담고 싶어했다. 아마존이라는 이름에는 베조스의 꿈이 담겨 있다.

실제로 아마존은 제국을 건설했다. 미국인들이 온라인 쇼핑에 쓴 1달러 중에서 43센트가 아마존으로 흘러들어 간다. 아마존을 대체할 경쟁자가 없다. 어디 이뿐인가. 아마존은 세계 최대 클라우드컴퓨팅 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AWS)를 운영하고 인공지능(AI) 개발에도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력 언론사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고 우주사업까지 손을 뻗는다.

아마존이 제2본사를 짓겠다고 발표하자 미국 전체가 들썩거린다. 238곳의 도시가 아마존에 제안서를 냈다. 전후무후한 일이다. 미국 50개주 중에서 제안서를 내지 않은 곳이 손에 꼽을 정도다. 알칸사주가 지원서를 내지 않았지만, 알칸사주엔 오프라인 유통의 자존심인 월마트의 본사가 있어서 그랬다. 월마트 눈치를 보느라 차마 제안서를 내지 못했을 뿐이다.

유치전은 눈물겹다. 자존심 센 뉴욕마저 최근 맨해튼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조명을 오렌지색으로 바꿨다. 맨해튼을 아마존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으로 물들이고 싶다, 뭐 그런 공개적인 구애다. 뉴저지는 70억달러의 세제혜택을 제안하면서 “우리보다 더 많이 줄 수 있는 곳 있으면 나와 보라”고 큰소리를 쳤다. 사막 지역인 애리조나주의 투손시는 마땅히 제안할 게 없어 고민하다 베조스에게 편지 한장과 6.4m짜리 선인장을 보냈다. 편지에는 이렇게 썼다. “다른 곳에서는 자라기 어려운 선인장이 투손에서는 이렇게 잘 자랍니다.”

아마존 제2본사를 유치하면 당장 50억달러, 우리 돈으로 5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게 된다. 일자리가 5만개가 생긴다. 유치전에 뛰어든 도시들에게 아마존은 복권 당첨이나 다름없다.

벼락부자가 된 복권 당첨자들의 말로가 좋지 않은 것처럼, 아마존이 들어온 이후 부작용이 커졌다는 지적도 있다. 시애틀도 인구가 늘고 경제가 좋아졌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최근 5년간 두 배 뛰었다. 집 없는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졌다. 시애틀 의회에 사회주의 성향의 의원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마존의 소유권을 대중들에게 넘겨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어쨌든 아마존 덕분에 시애틀의 평균소득은 뉴욕을 넘어선다. 우리도 시애틀처럼 잘 살아보자는 구호가 미국 전역을 떠돈다. 자신 앞에 길게 줄을 선 238개의 도시를 바라보며, 베조스는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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