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벌이는 불행하다? 대단한 착각!"

日 문화인류학자 본 탄자니아 삶
도시인구 10명 중 7명 일용직
가난해도 유연·역동적 인생살아
한평생 '성실한 노동' 강요하는
자본주의 고정 틀 돌아보게 해
………………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오가와 사야카|224쪽|더난출판
  • 등록 2017-09-13 오전 12:12:00

    수정 2017-09-13 오전 1:03:56

탄자니아 므완자 시의 한 거리에서 헌옷과 신발을 파는 노점상. 누구는 비현실적 글로벌경제의 뒷골목이라고 말하지만 이들의 ‘하루벌이’는 고단한 자본주의가 충분히 시선을 뺏길 대안처럼 보인다(사진=더난출판).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오늘을 사는 사람’과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사람.’ 척 봤을 때 썩 훌륭해 보이는 쪽은 당연히 ‘오늘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들 부류가 다른 이름을 뒤집어쓴다면 상황은 완전히 뒤집힌다. ‘하루살이와 평생살이’ ‘계획이 쓸데없다는 사람과 계획대로 철저히 움직이는 사람’ ‘미래 따윈 없다는 사람’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는 사람’. 어떤가. 처음과 같은 지지표를 던지기가 애매해지지 않았나. 도대체 뭐가 다르지? 오늘을 잘살아 보겠다는 건 똑같은데 왜 졸지에 한쪽은 ‘막 사는 인간’이 돼버린 건가.

솔직히 따져보자. 사람은 원래 그날그날 산다. 1년 뒤, 10년 뒤를 바라본다는 건 엄청난 자신감이다. 그 시간에 내가 어찌돼 있을지 누가 알 수 있겠나. 내일을 내다본다는 건 오늘 하루의 평화를 위한 보험일 뿐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덜 시달리기 위한 속편한 조치. 그런데 ‘하루살이’는 왜 안 되는 건가. 하루 안에 모든 걸 다 끝내자는 건데? 사는 일도, 계획도, 보험도, 보상도, 하루에 콤팩트하게 싹?

일본 문화인류학자가 내놓은 한 인류학보고서가 그렇게 묻고 있다. 상황에 따라 직업을 갈아치우고 실패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벌이로 먹고사는 일이 가능하더라고. 1인당 GDP 1000달러를 하루벌이로 충당하더라고. 고작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면서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더라고. 꿈타령 같은 이 모두를 실현하며 사는 이들이 진짜 있더라고. 그곳은 바로 아프리카 대륙 동쪽에 위치한 탄자니아다.

책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생계를 꾸리는 탄자니아 도시민을 들여다본다. 하루벌이의 삶을 질펀하게 펼친 리얼한 다큐멘터리다. 치열하게 고민해 결정한 직업으로 한평생 성실하게 노동하는 걸 미덕이라고 믿게 한 자본주의 틀에 대못 하나씩 박히는 그림이 곳곳에 펼쳐진다. 패배와 낙오의 상징인 줄 알았는데 유연하고 탄력적이며 역동적이기까지 한 인생이 그 하루살이더라고.

△“일은 일…해보고 안 벌리면 다른 일 하지 뭐”

탄자니아 북서부. 빅토리아 호수를 낀 도시 므완자. 저자는 이곳에서 15년을 도시민과 섞여 살았다. 그중 3년은 헌옷 행상에 나서기도 했다. 영세상인의 장사관행, 상업활동, 사회적 관계를 조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다가 찾아낸 특별한 현실이 있었다. 도시인구 10명 중 7명 가까이가 ‘비공식 경제활동’에 종사해 소득을 얻고 있더란 거다. 정확하게는 66%. 나머지 34%는 농업과 가사노동 종사자다. 그렇다면 공무원이나 샐러리맨은 어디쯤에 박혀 있는 건가.

비공식 경제활동이란 건 통계로 잡을 수 없는 소득구조를 말한다. 실제 그들의 직업은 수시로 바뀌었다. 어제는 옷을 팔았는데 오늘은 신발을 판다. 내일은 운전기사가 될지도 모른다. 건설현장에 투입될 수도 있다. 날품팔이일 수도 있고. 그런 그들이 입버릇처럼 수시로 올리는 말이 있다면 “일은 일”.

저자가 처음 위기감을 느낀 게 바로 그 ‘일은 일’이었단다. 선진국 잣대로 볼 때 ‘이일 저일 가릴 때가 아니다’란 뜻으로 들렸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더란 거다.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일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던 거다. 오히려 일의 서열화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철학의 다른 표현이었다고 했다. 그저 시험 삼아 한번 해보지 뭐” 나아가 “일단 해보고 돈이 안 벌리면 다른 일”이었던 거다.

△하루 버는 ‘자율적 경제’로 대기업 흡수 피해가

‘프로페셔널’이 아닌 ‘제너럴리스트’의 방식 그 자체였다. 빈틈없이 계획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융통성있게 대응하는 형태 말이다. 가족 중 누구 하나가 실직을 해도 요란법석을 떨지 않는다. 다른 구성원이 벌면 되니까.

저자가 만난 부크와(50)라는 노점상 주인은 젊은 시절 버스호객꾼으로 일했다. 얼마 뒤 샌들에 장식 다는 일을 했고, 트럭운전사로 넘어갔다간 건설현장에서 날품팔이를 했다. 중간중간 일이 없을 땐 아내가 나섰다. 재봉일을 하던 그이는 신발장사를 하다가 원단을 납품했고, 시트에 자수 놓는 일을 했으며, 이내 도넛 장사로 갈아탔다.

자본주의 사회가 신봉해온 원칙에 철저히 반하는 행태. 저자는 이 전술 덕에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시장을 봤다고 털어놓는다. ‘각자의 재량에 따라’ 움직이고 그 실천을 계속 돌리는 게 모두가 살아남는 방법이란 걸 그들은 터득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이들이 자본주의의 최고봉이라고 할 독과점까지 농락하고 있더란 것. 고정적인 건 하나도 없는 그들의 ‘자율적인 경제영역’이 대기업에 끝내 흡수되지 않고 교묘히 피해가더란 얘기다.

희한하게 뒤집힌 먹이사슬도 있다. 수입상은 소매점 주인에게, 소매점 주인은 노점상에게 의존하는 구조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단다. 물고기에 비유해볼까.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는 일이 대단히 어렵다. 이리저리 싹싹 빠져나가는 통에. 빠져나간 작은 물고기는 여기저기서 물건을 싸게 팔고 있지만 물을 모조리 빼지 않는 이상 이들을 다 빨아들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걸 포기하고 그들과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자본주의의 파행? 자본주의의 진보?

이쯤에서 슬슬 궁금해진다. 이것이 과연 뭔가. 자본주의의 파행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각을 세우고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소리는 아니다. 저자 자체도 그럴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세상이 여기 있더란 것을 ‘보고’할 필요가 있었던 거다. 그 잘난 경제학자와 자본주의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제껏 또 앞으로도 절대 실현하지 못할 인간행복, 그 어떤 펀드·금융상품으로도 절대 살 수 없는 그것을 이들은 하루벌이로 해결하고 있지 않느냐고.

‘한국과 탄자니아,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따위의 식상한 질문은 하지 말기로 하자. 다만 짚고 넘어갈 건 분명히 있다. 사실 ‘불확실성’이란 건 이곳이나 그곳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곳의 하루살이는 최소한 불행하진 않더란 거다.

행간에 한번씩 멈춰설 때마다 자본주의가 힘들여 무장시킨 단단한 뇌 조직에 금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에도 “그게 사는 거냐”고 되묻는 이들까지 굳이 설득할 필요는 없다. 하루살이라는 게 성공도 하루짜리지만 실패도 하루짜리라는 걸 이해해야 풀 수 있는 공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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