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뿐이랴. 부자들 역시 한국을 등지고 있다. 영국의 최대 투자이민 컨설팅 업체는 한국에서 2024년 한 해 동안 1200명의 백만장자가 국외로 이주할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에 800명이 떠났으니 일 년 만에 50%가 늘었다.
대한민국은 기업도, 인재도, 부자도 놓치며 기적을 잃어버린 나라가 되어가는 와중에 다른 나라는 우리가 놓친 보석들로 배를 채우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의 중심인 반도체 산업은 기술력 약화와 인재 유출 문제로 경쟁력 상실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연구개발(R&D) 투자 지원, 세금 감면, 인재 양성 프로그램 등을 전폭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도 각종 제도와 지원책을 기반으로 자국 내 생산 제조업 부활에 힘쓰고 있다. 일본마저도 대만·미국과 연계한 반도체 중흥에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각국이 빠른 속도로 반도체 경쟁력 확보와 인재 양성 및 유치에 사활을 걸고 국가적 총력전을 펼치는 동안 우리나라는 온갖 규제와 방관으로 반도체 제조업이 한국에서 자리 잡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돈이 몰리고 인재가 들어와 경제가 팽창하던 대한민국은 왜 이제 기업이 탈출하고 인재가 유출되고 부자가 이민해 급격히 성장동력이 식어가는 나라가 되었을까. 우리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이 부의 집적과 생산성 향상, 경제 성장을 위해 세팅되지 않고 되레 규제와 약탈적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그리고 이 거대한 시스템의 변화 이면에 경제와 민생을 모조리 정치화하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정치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
노동시장도 경제정책의 정치화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정권의 목표를 위해 경제논리를 무시한 채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놓은 탓에 가뜩이나 경직된 노동환경에 치인 기업들은 더욱 고용을 기피하고 편의점, 식당 등 서비스업 일자리가 사라져 이제 갓 취업시장에 나온 청년이나 은퇴 후 저임금 일자리라도 얻고 싶은 노인들은 일할 곳이 사라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훈풍은 강고한 대기업 노조에만 불고 노동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겐 한파만 몰아치게 했다. 그나마 남은 생존형 일자리도 키오스크에 쫓겨나고 로봇에 점령당하고 이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국가의 세금과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정치인가, 경제인가, 민생인가. 어떤 정책이든 그 후과는 5~1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다가온다. 정책의 실패는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후에 날아올 청구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만을 위해 정치화된 경제정책을 자꾸 반복하면 기업과 인재, 부의 유출은 막을 도리가 없다. 세련된 정치적 구호와 장밋빛 전망으로 잠깐은 유권자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 그렇게 국회의원이 되고 정권도 창출해 기업인들 불러서 호통 치고 세금 더 걷고 대기업 노조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몇 년씩 국가의 경쟁력을 곶감 빼먹듯 빼먹고 나면 그 뒷감당은 누가 무슨 수로 하는가. 기업이 떠나고, 인재가 떠나고, 자산가들이 떠나면 이 땅엔 누가 남고 누가 일해서 돈 벌어 세금 내고 살아갈 것인가 말이다.
결국 환경이 문제다. 이 모든 것을 멈추고 역전할 수 있는 환경 인프라 구축이야말로 국민의 숙제요, 활로이다. 정치는 누구의 것이고 정책과 시스템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각자가 자각하고 청맹에서 벗어나는 그때는 언제나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