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방 분야에서는 ‘인지전’(cognitive warfare)이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다. 인지전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타국 국민의 생각(인지)과 행동을 조종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미국 대선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이다.
처음에는 의견 교류와 인식 확산 수준의 활동을 벌였다. IRA가 운용하는 트위터 계정은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렸다. 공감과 지지 그리고 정보의 교류를 통해 네트워크를 확장시킨 것이다. 이러한 트윗을 대통령 후보나 유명인이 리트윗하면 더욱 넓게 확산했다. 그러다 점차 작은 실천을 부추겼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진을 올리게 한다거나 “뭔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부추기는 것이다. 이러한 코멘트는 순진한 열성 지지자들을 자극해 행동에 나서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분노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고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일깨우기만 하면 된다. 순식간에 수백, 수천 개의 리트윗와 ‘좋아요’를 실행하는 트롤봇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러시아의 IRA는 진보 단체의 ‘트럼프 탄핵’ 시위에 광고 지원을 했다. 흑인활동가 사이트에서는 “검은 옷을 입고 다시 싸우자”고 흑인들을 부추겼다. 그러면서 보수진영 사이트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소아성애자라는 음모를 퍼트리며 도덕적 분노를 자극했다. 양쪽을 지원함으로써 서로 간의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양극화에 북한이나 중국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는 없다. 그러나 인지전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바라는 세력이 있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정치가 점차 경쟁적 대립에서 적대적 분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지전 차원에서 사회적 균열이나 정치적 대립만큼 좋은 빌미는 없다. 서로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만 부추기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권과 국민이 인지전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적들에 의해 조종당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