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출동 후 무력감…"또다른 출동으로 잊어"[인터뷰]

소방·경찰·구급대원 1년째 후유증
출동대원 동료로 둔 구급대원 인터뷰
"참사 당시 손 쓸 수 없어 장례식 이송만"
"힘들다 얘기 안해…업무부담 줄여줘야"
  • 등록 2023-10-27 오전 6:01:00

    수정 2023-10-27 오전 6:01:00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조금 큰 사고가 났겠거니 싶었는데 눈앞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길바닥에 깔려 있고…사람들은 뒤엉켜 빠져나오질 못하고…길 가던 시민들이 심폐소생술을 하고…그런데도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일주일 앞둔 2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골목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의 길’에 추모 메시지가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출동한 소방·경찰·구급대원 다수는 1년이 흐른 이날까지도 불면증과 악몽, 공황장애, 식욕부진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소방청이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구조 활동에 참여한 뒤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소방관은 1316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1일 서울 소재의 한 소방서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한 구급대원 윤모(45)씨는 참사 당일 현장에 출동한 대원들을 동료로 두고 있다. 그는 “(동료들이) 평소와 똑같이 잘 지내다가도 이태원 얘기만 나오면 급격히 어두워진다”며 “쉽사리 이야기하길 꺼린다”고 밝혔다.

윤씨는 참사 당일 출동한 대원들이 심각한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도 출동 때 심정지 환자를 만나면 ‘조금만 빨리 발견되거나 현장 상황이 좋았다면 살 수 있었을 텐데’란 안타까움이 들 때가 있다”며 “그런데 이태원 참사는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많은 분들이 길바닥에 쓰러져 계시지 않았나. 그저 사망자들을 인근 장례식장으로 이송하는 역할만 계속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당시 구급대원들이 구급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참사 이후에도 소방·경찰·구급대원은 스스로 돌볼 시간도 없이 평소처럼 근무에 나서야 했다. 윤씨는 “힘들어서 병가나 휴가를 쓰겠다고 한 직원은 없었다”며 “힘들다는 표현 자체를 거의 들은 적이 없고, 워낙 출동이 많고 몸이 지치니까 정신없이 생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동의 후유증을 또다른 출동으로 덮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출동 건수가 많은 센터의 경우 구급차 한 대당 하루(24시간) 출동 건수가 20건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반면 인명구조와 화재진화를 위해 출동할 때 받는 ‘출동가산금’은 건당 3000원(일일 최대 3만원, 3회 초과 때부터 적용)으로 수년째 묶여 있다.

윤씨는 정부가 참사 당시 출동한 대원들에게 심리치료를 지원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업무과 과중해 생기는 문제와 근무체계, 후생복지에도 조금 더 신경 써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나아가 윤씨는 올해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인파 및 안전 관리와 관련해 “질서를 지켜주시고 사람이 갑자기 몰릴 경우에는 신고를 잘 해달라”며 “구급대원은 현장에서 시민들을 병원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저희의 협조 요청에 잘 따라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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