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TMI]때아닌 신 외감법 친부 논란…왜?

한공회장 입후보 채이배 전 의원 구설에
채 전 의원안이 가장 강도 낮았다?.."법안 통과 최우선" 반박
신 외감법 정신 되돌리려는 움직임에 누가 맞설지 주목해야
  • 등록 2020-06-15 오전 5:30:00

    수정 2020-06-15 오후 6:32:11

여의도 증권가는 돈 벌기 위한 정보 싸움이 치열한 곳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쪽지와 지라시가 도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인 곳입니다. 너무 정보가 많아서 굳이 알고 싶지 않거나 달갑지 않은 내용까지 알게 되는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신조어도 있는데요. TMI일 수도 있지만 돈이 될 수도 있는 정보, [여의도 TMI]로 풀어봅니다.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지난 2017년 10월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때아닌 친부(親父)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누구와 피를 나눈 부자관계인지 이목구비를 맞춰가며 따져보자는 건데요. 지난달 막을 내린 20대 국회에서 배출한 최대 성과 중 하나이니 당시 법 개정 작업에 참여한 이들 눈에는 저마다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제야 논란에 불이 붙은 걸까요.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와 맞물린 영향으로 보입니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채이배 전 민생당 의원이 출사표를 냈는데, 그를 흠집 내기 좋은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한공회장 후보로 등록한 채 전 의원이 정견서에서 밝힌 ‘저는 회계사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의정 활동 4년 만에 40년 된 낡은 자유수임제를 폐기하고, 주기적 지정제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만든 신 외감법, 반드시 지키고 보완하여 회계개혁을 완수하겠습니다’와 같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몰아세우는 건데요.

마침 함께 20대 국회 정무위에서 활동했던 최운열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채이배 의원의 입법안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의 안 중 가장 강도가 약했다’ ‘모든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합의점을 찾았기 때문에 특정 의원 한 사람의 노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언급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실제로 익명으로 운영되는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해당 인터뷰를 인용, 진위공방을 부추기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가장 강도가 약했다”는 주장이 ‘역린’을 건드린 듯합니다. 아직 전면지정제 도입이 무산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회계사들도 많을 테니까요.

신 외감법을 떠받치는 양대 축은 주기적 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입니다. 주기적 지정제는 기업이 6년간 외부 감사인을 자유롭게 선임하면 다음 3년은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해주는 제도입니다. 표준감사시간제는 감사인이 회계감사기준을 충실히 준수하고 적정한 감사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시간을 정해놓는 제도이고요.

둘 중 쟁점은 주기적 지정제입니다. 언론보도들과 국회 속기록을 종합하면 현재 주기적 지정제의 뼈대인 ‘6+3’이란 씨앗이 처음 뿌려진 건 2003년입니다. 10년 가까이 지난 2013년 12월 경제개혁연구소에 연구위원으로 몸담고 있던 채 전 의원은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자유수임과 지정을 혼용한다는 6+3 주기적 지정제를 다시 끄집어 올렸고요. 금배지를 달게 된 채 전 의원은 2016년 11월 한시적으로 이런 제도를 운영하자는 외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합니다.

하지만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2017년 2월 열린 관련 공청회에서 논의한 외감법 개정안 9개 중 6+3 주기적 지정제를 담고 있는 법안은 채 전 의원안이 유일했죠. 당시만 해도 정부는 현행 6+3안도 수용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며 보다 완화된 안(선택지정제:기업이 3개 감사인을 선택하면 증권선물위원회가 이 중의 하나를 지정)을 제시했다고 채 전 의원은 전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회계개혁을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당선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습니다. 여당 의원과 정부도 6+3안에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현재의 법안과 누구의 발의안이 빼닮았는지 따지는 것은 다소 결과론적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 전 의원 주장대로 ‘어느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다만 교착 상태에 빠지기 쉬운 입법 과정에 절충안을 일찌감치 내놓고 끊임없이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려 한 채 전 의원 공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채 전 의원은 ‘지금의 외감법은 제가 낳은 옥동자나 다름없다’고 청년공인회계사회의 서면 질의에 답한 바 있습니다. 옥동자는 어린 사내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입니다. 세상의 빛을 볼지 불투명했던 제도가 무사히, 그것도 뱃속에서보다 더 건강히 사회로 나왔으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채 전 의원은 “처음 6+3 아이디어를 내서 발의했을 때에는 기업과 정부뿐 아니라 한공회도 반대했다”며 “법을 반드시 통과시킬 목적으로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1회(9년) 시행으로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여전히 주기적 지정제가 한 주기를 돌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신 외감법을 지켜내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한공회장 선거에 뛰어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솔로몬 왕의 지혜를 슬쩍 빌려보고 싶습니다. 하루는 두 여인이 솔로몬 왕에게 갓난아기를 데려와 서로 제 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거짓을 가려내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미가 누구인지 판단이 안 되니 국법대로 아이를 둘로 나눠 갖도록 하여라.” 그러자 한 여인이 울부짖으면서 “안됩니다. 차라리 제가 포기하겠습니다”라며 엎드려 빌었다고 하죠. 솔로몬 왕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 여인에게 온전한 아이를 주었습니다.

이처럼 신 외감법이란 세 살배기를 가르려는 시도도 앞으로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회계개혁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언행을 ‘반동’으로 부르고 향후 4년이 가장 거세리라고 봅니다. 반동이란 진보적이거나 발전적인 움직임을 반대해 강압적으로 가로막는 것을 일컫습니다. 이런 반동에 맞서 누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지 지켜보면 친부 논란이 종식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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