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전도사’로 전해지던 이 교수가 책 제목을 ‘포용적 성장’으로 명명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현 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기도 한 만큼 그의 ‘통찰력’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니 51% 대 49% 정도로 복지 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뒀지만 큰 틀에서 사용자 측과 노동자 측,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가릴 것 없이 대체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이 교수는 저서에서 ‘성장과 복지는 별개의 가치가 아니라 새의 두 날개와 같이 순환 가치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서 ‘성장을 위한 복지, 복지를 위한 성장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성장의 주역은 혁신이고 복지의 주역은 신뢰’라는 대목에선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지속 가능한 혁신을 위해서는 불균형한 소득의 균형화가 필요하고, 혁신이 낳는 부가가치 속에서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국가적 돌봄이 필요하다’면서 ‘국가 정책은 성장과 복지의 선택이 아니라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가진 자의 자발적 사회적 봉사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포용적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했다.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사회 안전망 구축과 결과적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해선 적절한 수준의 조세와 함께 ‘기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 스스로도 몸담았던 학계를 비롯해 각종 강연과 특강을 다니면서 4차 산업혁명과 스마트시티, 공유 플랫폼 등의 성공적 안착을 견인할 ‘지혜 기부’에 아낌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혁신성장의 결과인 증세를 통해 사회불균형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증세는 기업가정신을 잃지 않을 만큼만 부과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며 ‘성장을 저해할 정도로 속도가 빠르거나 과격한 방식의 증세는 안 된다’는 대목에선, 과연 어느 정도의 증세가 합리적일지에 대한 숙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 교수는 ‘기술이 번 돈을 제도가 까먹는다’며 본질과 동떨어진 규제들은 전부 개혁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기술의 발전보다도 제도개혁이 더 중요하다는 언급까지 했다.
이 교수는 슘페터의 격언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예로 들면서 파괴 없는 혁신은 혁신이 아니라 혁신하는 척하는데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60조의 인간 세포들은 평균 100이면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데, 끝까지 죽지 않는 세포들을 암세포라고 부른다”면서 “파괴되는 일자리와 기업보다 질 좋은 일자리와 기업이 더 많이 태어나면 국가는 질적·양적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비록 운명을 달리했지만 다시금 대한민국을 크게 일으키려고 했던 그의 발자취가 큰 밑거름이 돼, 이 교수에 버금가는 훌륭한 이론가와 훌륭한 실천가들이 지속적으로 양성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창조적 파괴’ 말이다.
이 교수가 국가 발전을 위해 울렸던 경종들이 (대단히 황망하고 안타깝지만) ‘이민화의 창조적 파괴’를 계기로 한층 더 심화·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