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서가] 김기호 "책은 타인의 경험…귀 열고 들어라"

예스24 대표
사무실 컴퓨터 앞·지하철 안…
책 읽을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서재
'로마인이야기'서 미국을 보고
'지구별여행자' 읽고 오만함 반성했다
  • 등록 2013-07-24 오전 7:38:36

    수정 2013-07-24 오전 7:56:56

서점 CEO에게만 할 수 있는 질문을 했다. 서점의 역할이 뭐냐. 김기호 예스24 대표의 대답은 단단했다. ‘책의 미래를 고민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책을 판다고 다 서점은 아니라고 했다. “이윤만을 따진다면 그곳은 ‘책 파는 곳’일 뿐 서점일 수는 없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엉뚱한 주제였을 수 있었다. 아무리 대형서점을 경영하는 CEO라고 해도. 밑도 끝도 없이 책 얘기를 하자고 들이댔다. 책이란 게 절반은 공공재라고 하지만 엄연히 가격을 매겨 시장에 내놓는 자본주의 산물 아니던가. 그 들고남을 관리하는 대표를 만나 한 얘기는 시장도 운영도 매출도 아니었다. 인터뷰는 장장 두 시간 반에 걸쳐 이어졌다.

김기호(53) 예스24 대표. 그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다독가였다. 서점 CEO니까? 과연 그럴까. 불과 이태 전까지만 해도 그는 책과 관련 없는 일을 했다. LG화학에서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GS강남방송 대표이사 전무를 거쳐 GS홈쇼핑 자문역으로 마무리한 27년이 주요 이력이다. 서점 CEO란 편견은 그에게 부당할 수 있다. 최소한 책읽기에선. ‘책은 지식보단 타인의 경험’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귀를 열게 만드는 것이 책이란 뜻이다. 다른 사람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듣지 않고 어찌 알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렇게 그의 귀를 열게 한 건 역사와 인문, 문학과 철학, 그리고 여행. 스펙트럼이 넓었다.

▲‘서재’ 개념은 바뀌어야

“장소보다는 보관이다. 책을 끄집어내 읽을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서재다.” 큰 서점 주인장의 주장이 그랬다. 어디서든 편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예전과는 달라졌다. 책상 앞에서 가장 경건한 자세일 필요는 없다. 더구나 전자책이란 것도 있지 않은가. 사무실 컴퓨터 앞, 지하철 안도 서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재는 어느 한 공간이 아니다. 수시로 바뀌고 움직이고 적응해야 하는 곳이다.”

김 대표의 이렇듯 특별한 서재에 꽂힌 책들은 실로 다양하다. 경제·경영, 역사·인문은 기본이고 무협소설까지 망라한다. 전자책 단말기엔 주로 시리즈물이 들어 있다. 장르소설과 미스터리전집 등. “책은 깊이 생각하며 정독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난 고민하며 정독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일단 제목과 저자도 잘 기억이 안 난다.” 한 차례 호탕하게 웃고 나선, 대신 장르 편식은 없다고 했다. “그때는 읽을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지나고 나니 이유는 사라지고 책만 남더라.”

▲‘로마인이야기’ 현대 유럽·미국 이해하는 바탕

“공부보다는 편해지려고 읽는다. 여행서가 그렇고 소설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끌린다.” 재미있는 건 비슷한 연배의 남자들이 모여 얘기를 하다 보면 마지막에 도달하는 지점엔 ‘역사’가 있더란 거다. 굳이 그 까닭이 아니더라도 김 대표가 애착을 갖는 분야는 역사다. 한 시대를 생생히 느낄 수 있어서다. 그런데 역사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를 보고나서다.

왜 일본인이 로마역사를 다뤘을까에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처음 접한 건 10년 전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한 번은 읽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로마를 봤더니 미국이 보이더란 거다. “미국과 로마는 너무 닮아 있었다. ‘시민권’ ‘연방’이 로마에 있었다. 시민권이 있으면 아무도 사형을 못 시켰다. 연방은 A부터 Z까지 모두를 점령해야 끝나는 개념이었다. 가령 한니발이 로마를 격파했다. 하지만 무너뜨리진 못했다. 연방을 장악하지 못해서다.” 로마는 유럽을 문명화시키고 통치철학 그 자체가 됐다. 한때 세상은 로마와 비로마로 나뉘었다. 마치 미국과 비미국이었던 것처럼. “‘로마인이야기’는 미국이 왜 강한가를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됐다. 단순한 서양사가 아니다. 현대 유럽과 미국을 근본부터 이해하는 바탕이 됐다.”

김기호 예스24 대표(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류시화 여행서로 편협한 시각 교정

언제부턴가 김 대표의 손엔 강한 도전을 다룬 책이 많이 잡힌다. “잔잔한 성공보다 극한을 견디는 스토리를 찾게 됐다. 직접 만든 기구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한 이시카와 나오키의 ‘최후의 모험가’, 산티아고를 순례한 단상을 쓴 정진홍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같은.” 모험가나 순례자의 길은 평지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험한 길을 수십 수백킬로는 가야 한다. 세상만사가 기록되지 않겠는가. 인생과 생각에 깊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의 표현이 그랬다. “하늘에 별이 몇천 개가 널려 있는데….”

류시화의 인도여행서도 그의 독서기에 올라 있다. ‘지구별 여행자’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등. “어느 부분에선 이런 맥락이 읽혔다. ‘인도가 원래 그런 건데 무언가 너를 불편하게 한다고 화를 왜 내느냐. 여행을 왔으면 불편까지 즐겨야지….’ 모든 것을 다 내 시각으로만 봤구나 반성을 많이 했다.”

▲책의 가치, 의심하지마라

철저히 독자입장에서 책을 보다보니 그에게도 좋은 책의 기준이란 게 생겼다. ‘책을 읽는 동안 상상력을 얼마나 불러일으키느냐’다. 분석보단 사고를 대입하는 편이다. 그러니 상상력이 중요할 수밖에. 그는 결국 책은 ‘좋다 나쁘다’가 아닌 ‘필요한가 아닌가’의 구분인 것 같다고 말한다. 선택하지 않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란 얘기다. “바로 그때가 아닐 뿐이다. 책은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사는 동안 문제가 생기면 법륜의 ‘답답하면 물어라’처럼 하면 된다. 책을 들춰보란 얘기다. 한 예로 그는 육아문제를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육아다. 회사에선 작은 일에도 사업계획서란 걸 만들지 않는가. 그런데 보통 아이 키우는 일엔 계획이 없다. 방법은 책이다. 갈등 해결을 위한 방향타로 삼으면 된다.” 책이 어디 모든 걸 해결해주겠는가. 그 가치는 의심하지 말란 외침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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