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치는 알짜 사업을 과감히 매각하고 파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발빠르게 재편한 뒤에야 가까스로 일본의 대표적인 B2B(기업간 거래)기업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낸 데 이어 지난해에도 그 이상의 성과를 냈을 것으로 예상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국경을 막론하고 주요 기업들은 ‘성장’이 아닌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삼성, 구글, 소니 등 한국·미국·일본 글로벌 대표 기업들이 올 한해 ‘선택과 집중’에 올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지난해 본격화한 중국의 전방위적인 산업굴기(堀起·떨쳐 일어섬)가 이들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삼성은 지난 2014년 삼성토탈 등 화학 계열사 2곳과 방산 계열사 2곳을 한화그룹에 매각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남아있던 화학사업을 모두 정리했다. 삼성SDI의 케미칼 사업부문과 삼성정밀화학을 롯데그룹에 넘기면서 3조원의 자금을 확보한 삼성그룹은 향후 미래 성장동력인 전기차 배터리 및 전장, 바이오 사업 등을 육성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삼성의 사업 재편 움직임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세 속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극적으로 성사시켰고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은 삼성물산(028260)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활용해 그룹 양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032830)에 대한 지배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삼성은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순환출자 고리 강화 문제를 연내 해소할 계획이다.
2015년 한해 삼성이 겪은 큰 변화들은 이 부회장이 와병중인 아버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조만간 경영권을 넘겨받을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다.
구글은 지주회사 ‘알파벳’ 체제로 전환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알파벳은 지난해말 뉴욕증시에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며 한해 거래를 마쳤다. 기존 대표 사업인 검색, 광고, 지도, 앱, 유튜브, 안드로이드 및 관련 기술 인프라는 그대로 구글에 남지만 신규 사업인 칼리코, 네스트, 파이버, 구글 벤처스와 구글 캐피털, 구글 X는 구글에서 독립시켰다. 구글의 기업 구조 변화는 글로벌 IT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최근 SK텔레콤(017670) 자회사 SK플래닛의 분사 결정은 구글을 벤치마킹한 대표적인 예다. SK텔레콤은 ICT 플랫폼 분야의 지주사로 활동하면서 3개의 자회사를 두기로 했다. 급변하는 모바일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글식(式) 플랫폼 전략이다. 네이버(035420)나 카카오(035720)가 사업부문 분사를 통해 몸집을 줄이고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면서 책임을 강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 기업 중에는 소니가 반도체 사업을 분사하는 등 사업 재편에 앞장서고 있다. CMOS 이미지센서(CIS) 1인자 소니는 CIS 포함 반도체 사업 부문을 분사해 상반기 중 ‘소니세미컨덕터솔루션’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소니는 도시바의 CIS 사업을 190억엔(약 1850억원)에 인수해 CIS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비쳤다.
임지아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장수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꾸준히 ‘버림’을 통해 경쟁기업과 차별화하며 고객가치를 만들어냈다”면서 “외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뤄지거나 비용 절감 차원 때문에 일어나는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오랜 기간 고민과 준비 끝에 내린 ‘내일’에 대한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하준 현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외환경이 어려워지고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하지 않는 것은 개별 기업·기업집단 차원의 위기를 넘어 한국경제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을 촉진하는 법률의 미비, 관련 규제의 걸림돌과 같은 요인 등으로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변화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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