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1층 로비, 외래진료를 보러 온 김기환(55·남)씨가 발열감지 로봇 `테미` 앞에 서자 액정표시장치(LCD) 오른쪽 하단에 체온이 36.1도로 표시되면서 “정상입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가족들은 “우와~정상이래. 이거 신기하네”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날 발열감지 로봇을 처음 써 본 김 씨는 “사람이 발열 체크를 하면 여러 사람이 쓴 체온계를 이마나 귀에 접촉해야 하는데, 로봇은 체온을 잴 때 감염 염려가 전혀 없으니 오히려 더 마음이 놓인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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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료원, 코로나19에 방역로봇 테스트베드 자임
코로나19 장기화라는 국가적 재난상황을 계기로 서울의료원이 4차산업혁명의 결정체인 로봇산업의 테스트베드(시험대)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최일선에 나와 있는 의료진의 안전을 보호하고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자 의료지원 로봇을 실전에 처음 투입한 것이다.
서울의료원은 지난 12일 서울디지털재단과 한국로봇산업진흥원과 의료지원 로봇 도입을 골자로 한 `코로나19 사태 대응 및 서울 감염병 확산 방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서울의료원은 살균로봇(유버), 발열감지 로봇(휴림로봇), 운송로봇(트위니) 각 2대씩 총 6대를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무상으로 임대해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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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로봇 ‘따르고’는 7층 코로나19 전담병동 통합상황실에서 시험 운행 중이다. 의료진·확진자가 사용한 의복·의료폐기물 등을 처리장소로 운송하기 위해 들여 온 이 로봇은 테스트를 거쳐 음압병동에서 쓰일 예정이다. 따르고는 이날 생수 2L 묶음을 싣고 김정호 간호조무사(31·남)를 졸졸 따라다녔다. 로봇 앞쪽에 달린 카메라는 김 간호사가 움직일 때마다 방향을 틀면서 반응했다.
김 간호사는 “총괄 물류창고에서 무거운 물건을 반출할 때 직접 들고 다니지 않고, 허리도 숙일 필요가 없어서 편리하다”며 “향후 폐기물 처리에 투입되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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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인력에만 의존 못해…개선 통해 활용 확대”
서울의료원이 로봇을 활용한 감염병 대응체계 고도화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신종 바이러스 발병주기가 최근 빨라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향후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이 계속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의료 현장의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사스와 2012년 메르스에 이어 신종 코로나는 2019년 발병했다. 신종 바이러스가 10년 여년을 주기로 나타나는 패턴에서 최근에는 그 시기가 5년 정도 앞당겨졌다.
정광현 서울의료원 행정부원장은 “의료진들이 현장을 철두철미하게 관리 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어 언제까지 인력에만 기댈 수 없다”면서 “병원은 대외적으로 의료진만 보이지만 청소나 소독, 폐기물 처리 등 숨어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5년 내 도래하게 될 신종 바이러스에 대비해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으로 의료현장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의료원은 로봇 사용으로 수집되는 데이터와 분석자료, 의료진 의견 등을 모아 서울디지털재단과 로봇산업진흥원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 기관은 추가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의료지원 로봇의 성능을 높여간다는 전략이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들은 현장에 투입된 로봇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다만 첫 투입인 만큼 작업의 정확도가 떨어지는 데 대해 아쉬워했다. 예혜련 서울의료원 소아청소년과장은 “로봇청소기처럼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방문자의 발열을 감지하고 열이 나는 사람을 찾아내는 기능이 추가된다면 의료 현장이나 공공장소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의정 간호부 팀장은 “병동 통로에서 환자와 부딪히는 등 돌발적인 상황만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면 운송로봇의 활용범위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