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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멈칫한다. 누구든 그럴 거다. 주름이 잔뜩 팬 얼굴과 마주치고, 그 얼굴의 아련한 눈빛을 읽어내면 말이다. 머리에 내린 하얀 서리에 마음이 쓰일 듯도 한데, 아는지 모르는지 여인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띄우고 있다. 폭 또는 길이가 2∼3m쯤 되는 광대한 화면의 위압감 때문인가. 마치 달려들 듯도 하니. 그런데 참 신기한 노릇이다. 그네들의 얼굴이 누군가의 그것과 오버랩되니. 내 어머니인지, 내 누이인지, 아니면 미처 기억해내지 못한 어느 세월의 것인지.
생각이 복잡해질 무렵 그 얼굴들을 캔버스에 빚은 화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산해진 주말의 서울 인사동. 그래도 바이러스 공포 따위가 막아설 길이 아니라며 찾아준 관람객에게 그이는 성심껏 ‘제주의 삶’을 전하고 있었다. 현실 속 자신의 제주와 그림 속 여인들의 제주, 그 둘이 엉켜 있는 삶의 인연에 대해.
작가 이명복(62). 정확히 10년 전인 2010년 2월에 그이는 돌연 제주로 향했다. 연고가 있던 것도 아니고, 야심찬 목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손들어 환영해주는 이도 없었고, 우격다짐으로 막아서는 이도 없었다. 다만 ‘찾아야 하는’ 것은 있었다. 육지에선 보지 못한 풍광, 육지에서는 만난 적 없는 사람, 육지에는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게 아무에게나 그냥 툭 던져지는 것이었겠나. 그이도 결국은 섬으로 찾아든 외지인일 뿐인데.
결국 10년쯤 걸렸나 보다. 풍광으로, 얼굴로, 이야기로 ‘제주의 삶’을 품게 되는 데 말이다. 인사동길 인사아트센터에 연 개인전 ‘삶’은 그 흔적이다. 새긴 듯 선명하게 제주 여인들의 인생을 각인한 인물화, 제주 풍광이 바람결에 흘려준 그들의 쓰린 이야기를 담아낸 풍경화 등 22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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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풍경은 책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프다”
“사실 풍광 때문에 내려갔다. 그런데 너무 아름다우니 고역이더라.” 처음 제주에 내려갔을 때를 묻자 털어놓은 얘기다. “그림도 안 되고, 그려야 할 이유도 없더라”고 했다. 막상 아름다움에 취해 내려가긴 했는데 풍경보다 못한 걸 왜 그리고 있는지 회의가 들었단다. 몸도 마음도 어울리지 못한 탓이다. 말이 좋아 답사지, 좋은 계절, 좋은 날에 유람하듯 나섰던 그 제주가 아니었던 거다. 3년은 헤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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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힘겹게 시작했다.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을 내고 ‘말’ 그림을 그렸다. “적응을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그림 그리러 간 사람이 놀 수도 없는 거 아닌가.” 그 고비가 버거울 즈음 그이를 자극하는 소재가 보였는데. ‘제주4·3사건’이었다. 이제껏 나 몰라라 했던 그 일에 비로소 눈이 틔었다고 할까. “내가 할 일이 있구나 하는 위안이 생기더라. 작가에게 던져진 먹잇감이라고 할까.”
중요한 모티프였다. 그렇다고 4·3사건을 본격적으로 옮겨놓은 건 아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스미듯 얹었다. 깊은 지하공간 위로 불그스름한 오름과 마을이 솟은 ‘침묵’(2014), 정방폭포 앞에 선 소녀의 뒷모습 위로 별빛을 쏟아부은 ‘기다리며’(2015), 초록·푸른·붉은 톤으로 앞이 안 보이는 우거진 숲을 헤쳐본 ‘4월’(2018), ‘긴 겨울’(2019), ‘붉은 숲’(2020) 등이 나왔다. “제주 풍경은 책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아프다. 숲은 감춰진 역사적 현장이려니 하고 그린다. 누가 들어가고, 왜 들어가야 했는가를 단초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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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삶…그네들이 신화의 주인공이더라”
그러던 그이에게 ‘다른 것’이 보였다. 여인이었다. 집 앞 한림 수원리 앞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 물질뿐인가. 그네들은 바다에서 돌아오는 대로 들로 밭으로 나가 억척같이 일을 한다. “모든 여성은 남성보다 일을 많이 하지만, 제주 여인들은 정말 엄청나게 하더라. 땅과 바다를 구분하지 않고. 인간이 어떤 노동을 해야 하는지 정해지진 않았지만, 운동을 하기 위해 밭으로 나가는 건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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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를 그리겠다고 작정한 적은 없다. 평범하지만 열심히, 아니 지독하게 투박했던 삶을 보니 자연스럽게 붓길이 열리더란 소리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제주 신화에는 여인이 자주 등장하지 않는가. 그런데 굳이 멀리서 그 주인공을 찾을 게 아니다 싶었다. 내가 그리는 사람이 신화의 주인공인 것을.”
제주생활 10년이 다 돼서 발견한 또 다른 삶. 이내 그네들의 얼굴이 화면에 올려졌다. ‘옥순삼춘’(2019)을 앞세워 ‘해녀 옥순삼춘’(2020), ‘삼춘 초상-변씨’(2020), ‘수원 해녀삼춘’(2020) 등, 거대한 캔버스에 흑백톤으로 박아넣은 해녀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밭일을 하는 굽은 허리, 낡은 옷가지, 거친 손에 들린 호미를 유심히 본 작품도 등장했다. ‘봄’(2020), ‘모정-춘화삼춘’(2020), ‘추수’(202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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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걸린 신작 대부분은 지난해 시작해 올초까지 마무리한 것들이다. 영감과 반향으로 멈추지 않는 붓질을 가까스로 추스른, 제주 여인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라고 할까. “여신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더라. 그들이 우리의 신적인 존재지. 다른 데서 더이상 신을 찾지 말자 싶었다.”
묵은 짐을 털어내고 이제야 좀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을까. “맞다. 보람도 있고 성과도 있다. 제주의 상처를 개인사로 집중해볼 기회를 얻은 셈이니. 얼굴은 곧 기록이 아닌가.” 더 감출 것도 더 드러낼 것도 없는 삶. 마주친 그 얼굴에 멈칫했다면 그건 마주친 삶에 멈칫했던 것일 터.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고 나지막이 읊조리고 있는. 전시는 20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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