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세대교체 가속화..경영 시험대 오른 3·4세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별세로 지분 승계 관심
  • 등록 2019-04-10 오전 6:00:00

    수정 2019-04-10 오전 6:00:00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인해 한진가(家) 3세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 포함해 재계에는 3·4세 오너 체제로의 세대 교체 바람이 거세다.

9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대기업 그룹의 경영권은 최근 몇년 사이 창업 3·4세로 넘어가고 있다. 삼성그룹은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3세 이재용 부회장이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3세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LG그룹은 지난해 구본무 회장 별세 이후 구광모 회장의 4세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경영 시험대에 오른 이들에게는 숱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지배구조 개편, 신성장동력 발굴, 반기업정서 극복 등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한진그룹 경영권 승계 변수는 상속세

지난해 10월18일 제주에서 열린 제62차 아시아·태평양항공사협회(AAPA) 사장단 회의 개막식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사진=대한항공)
조 회장이 별세한 한진그룹은 당장 조원태 사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질지가 관심이다.

조 회장은 세 자녀에게 대한항공(003490) 등 주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도록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각각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논란을 일으키며 경영에서 손을 뗐다. 장남 조원태 사장만 유일하게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과 주력 계열사 대한항공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재계에선 조 사장이 경영권을 승계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지분 상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속세가 변수다. 1700억~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지분을 팔아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180640) 지분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28.8%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어 행동주의 펀드 KCGI가 12.8%를, 국민연금이 6.7%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한진가 지분 가운데는 조 회장 지분이 17.84%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조원태(2.34%), 조현아(2.31%), 조현민(2.30%) 등 세 자녀의 지분은 미미한 수준이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한진칼 지분을 매각할 경우 KCGI, 국민연금의 지분이 상대적으로 부각된다.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KCGI는 지난 4일 공시를 통해 한진칼 지분을 기존 12.68%에서 13.47%로 높일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진가가 보유한 현금 등 자산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규모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세대교체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8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020560) 감사보고서 사태에 책임을 지고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박 회장의 장남이자 박인천 창업주의 3세 박세창 사장에게 관심이 모아진다. 그는 지난해부터 아시아나항공을 지원하는 정보기술(IT) 계열사인 아시아나IDT 사장을 맡고 있다. 다만 그룹 경영을 그에게 맡길지 전문경영인을 영입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그룹들 경영권 변화 속도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은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를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변경하면서 사실상 3세 경영을 시작했다. 지난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4년 만이다.

이재용 체제의 삼성그룹은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10년을 끌어온 반도체 백혈병 분쟁을 매듭지었고, 불법파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임직원 8000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다만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점은 부담으로 남아 있다.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9월 정의선 부회장이 그룹을 총괄하는 수석부회장에 오른 데 이어 지난달에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경영 보폭을 넓혔다.

그는 현대차그룹을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혁신을 거듭하는 것은 물론, 근무시간과 복장 등 조직문화에 있어서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헤지펀드 엘리엣의 반대로 인해 중단된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은 지난해 경영권을 이어받은 구광모 회장 체제가 조기에 안착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회장은 경영 키워드로 ‘수익성·신사업발굴·R&D(연구개발) 강화’를 제시하고, 시장을 선도하고 영속하는 LG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효성그룹은 지난 2017년 7월 조석래 명예회장이 ㈜효성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아들 조현준 회장이 대표이사에 올라 3세 경영을 시작했다. 코오롱그룹은 지난해 11월 이웅열 회장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기로 하면서 4세인 이규호 전무로의 경영 승계 작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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