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세상에 이보다 창대한 공약을 들어본 적 있는가. “유료 민간 탑승객을 태운 ‘달 근처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겠다. 2023년이 목표다. 달기지 건설은 기본, 궁극적으론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거다.” “인류의 우주여행, 단시간 우주관광이 목표다. 준궤도 로켓으로 100㎞ 고도까지 올라가 무중력 우주관광을 하고 사뿐히 내려오는. 2024년까진 달에 간다.” “우주 관광객을 지구 대기권 너머까지 데려가 몇 분 동안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게 해주겠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를 제작하겠다. 상공에서 로켓을 공중발사할 수 있는 비행기다.”
대단한 스케일이거나 대단한 헛소리. 아무래도 앞쪽보단 뒤쪽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하지만 공약을 내놓은 면면을 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순서대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리처드 브랜슨 버진 CEO, 폴 앨런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굳이 이들의 공통점을 챙기자면 실리콘밸리를 기반으로 무지막지하게 성공한 부호란 거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유명 브랜드를 여럿 키워내지 않았나. 사실 여기까지라면 별로 재미가 없다. 참으로 가당치 않은 다른 공통점이 흥미롭다는 거다. 본업을 다지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될 우주개발에 푹 빠진 기업가. 달에든 화성에든 앞다퉈 막대한 자산을 쏟아붓겠다지 않나. 스스로 자청해 우주전쟁에 나섰다는 소리다.
그저 공약만도 아니다. 머스크가 세운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는 초고속 인터넷용 위성 60기를 발사했다. 베조스가 설립한 블루오리진은 3년간 개발한 달착륙선 블루문을 공개했다. 둘 다 지난 5월의 일이다. 브랜슨의 버진 갤러틱에서 제작한 우주선 ‘스페이스 투’도 있다. 지난 2월 모하비사막에서 탑승객 1인을 태우고 90㎞ 상공까지 올라갔다가 귀환했다. 승객을 태운 첫 시험 우주여행 기록도 썼다. 앨런은 지난 4월 날개폭이 100m가 넘는 제트기 스트래토론치를 제작해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세계서 가장 큰 항공기로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역할은 공중에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발사대다.
이미 지구정복이라면 이룰 만큼 이룬 이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쯤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스타워스를 외치며 우주로 튀어나가려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책이 주목한 건 바로 그 지점이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 겸 작가로 활약하는 저자가 이들을 밀착 취재하고 나섰다.
돈만 퍼붓는다고 저절로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지 않은가. 달리 우주고, 달리 블랙홀이라 하겠나. 저자는 이들이 우주를 품게 한 동기·발단·환경·캐릭터를 캐내는 일에 적잖은 할애를 했다. 유년·청년시절부터 훑어가는 식이다. 덕분에 우주개발이란 행간에 들어찬 사연까지 촘촘하다. 시험 중 충돌사고로 목숨을 잃은 조종사, 수시로 폭발하는 로켓, 우주분야에선 절대 갑인 나사(NASA·미국 항공우주국)의 거들먹거림, 정치적으로 집적거리는 백악관, 군산복합체와의 법정소송 등, 마치 시나리오가 있는 에피소드라고 할까. 이들의 배경을 모르고 시작했다면 과연 우주를 향한 흑심을 숨기고 그간 어찌 자동차회사니 유통업체니 하는 기업을 키워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판박이’ 목적이지만 성향 차이를 보이는 거물들이 세운 대립각을 재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표적으론 머스크와 베조스. 물불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튀는 이는 머스크란다. 승리하든 실패하든 무대 중앙을 화려하게 장식해온 이유기도 하다. 반면 베조스는 조용하고 은밀하게 움직인단다. 오죽했으면 그가 세운 우주벤처기업은 여전히 장막 뒤에 숨어 있을까. 치열한 경쟁심에 둘은 다툴 일도 잦았다. 로켓 착륙방식·추진력을 놓고 싸우고, 발사시설을 놓고 투닥거리고.
머스크의 기질을 드러내는 일화가 있다. 2002년 페이팔을 이베이에 넘기면서 거머쥔 1억 8000만달러(약 212억원)를 쌈짓돈 삼아 스페이스X를 설립한 머스크는 로켓에 대한 집착이 광적이었나 보다. 작은 회사가 ‘까부는’ 정도로 취급했던 나사의 태도에 시위하고자 벌인 이벤트에도 로켓이 있었다. 라이트형제의 첫 비행을 기념하는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트레일러를 특수 제작했단다. 그 꽁무니에 7층 건물 높이의 로켓을 매달고 대륙을 횡단해 워싱턴DC에 입성, 경찰 호위를 받으며 퍼레이드를 벌이듯 행사장으로 들어섰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2003년 서른두 살 때 일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머스크의 욕심이 로켓 과시보다 더 큰 데 있었다고 말한다. ‘작은 신생기업이 우주산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상징을 싣고 싶어했다는 거다.
△지구정복과는 비교가 안 되는 ‘우주패권’
책은 ‘민간 우주탐사시대’의 중간 정리판쯤 된다. 실패는 더 할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듯하니까. 텍스트가 그런 신뢰를 준다. 잘 다듬은 다큐멘터리, 좀더 부풀리면, 매끈한 드라마나 소설처럼 보이는 서술이 강점이다. 격조 있되 따분한, 설명이 권위적인, 이해가 불가능한, 그런 과학물은 아니란 얘기다. 흠이라면 등장인물을 마치 우주신화의 주인공처럼 몰고 갔단 점이라고 할까.
숙제가 하나 남는다. 첫 질문이던 ‘왜 기어이 우주로?’ 저자는 이들에게 우주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꽂힌 점을 눈여겨봤다. 하나는 통신망이고 다른 하나는 운송네트워크. 뭐가 됐든 저렴하게 재빨리 확보하는 순간 이동통신이든 중공업이든 지구 안팎 인프라를 통째 거머쥘 수 있을 테니. 결국 우주에서 폴폴 풍겨오는 돈의 향기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거다. 지구정복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다음 세상의 패권이 우주시장에서 펼쳐질 거란 걸 알아챘다는 뜻도 되고.
냉정하게 보자면 거대한 우주쇼를 띄우겠다는 억만장자 몽상가들의 좌충우돌 도전기 정도로 읽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홀할 수 없는 대목은 이거다. 내일의 지식과 투자, 인재가 과연 어느 신호를 따르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