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시장따라 늘었다 줄었다… '고무줄' 분양원가 공개

노무현 前대통령도 반대한 원가공개
여론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도입
공급 감소·집값 과열 부작용 속출에
이명박·박근혜 정부땐 ‘축소 또 축소’
  • 등록 2018-11-19 오전 4:10:00

    수정 2018-11-19 오전 4:10:00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분양원가 공개는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제도다. 표준건축비를 현실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하면 되는 문제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개혁 전도사’로 불리며 두번째 경제부총리(2004년2월~2005년 3월)를 지낸 이헌재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이다. 하지만 결국 2년 뒤인 2007년 주택법이 개정되면서 같은 해 9월부터 2012년 3월까지 5년여 동안 공공아파트 61개 항목과 민간아파트 7개 항목의 원가가 공개됐다.

이처럼 분양원가 공개는 건설사가 아파트를 분양할 때 공사원가를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로, 잇단 부동산 규제에도 집값이 폭등하자 이를 억누르기 위해 노무현 정부 때 본격 도입됐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시 분양원가 공개를 찬성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분양가 원가(原價) 공개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민 복지를 이유로 이를 반대했다. 집값이 치솟았던 2004년 당시에는 “10배 남는 장사도 있지만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다”면서, 아파트 분양원가를 시장 원리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고 작심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여당 의원들의 극렬한 반대와 시민단체들의 주장으로 결국 이를 도입하게 됐다.

분양원가 공개 이후 민간 아파트 공급 물량이 줄고 집값 과열이 지속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공공주택 공개 항목을 현재 기준인 12개로 축소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민간아파트 부문을 원가 공개 항목에서 아예 제외했다.

최근 정부가 분양원가 공개를 시도하는 것도 과거와 맥락을 같이 한다. 고강도 규제로 평가받는 9·13 부동산 대책 이후 최근 주택시장이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이미 현 정부 들어 1년 6개월 동안 서울 등 수도권 집값은 급등했고, 청약시장에서는 여전히 일부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부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현 정부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로 제도를 회귀시키려 하고 있다.

이미 서울시와 경기도 등 지방자체단체는 발빠른 움직임에 나섰다. 지난 9월 경기도시공사가 공공분양·공공임대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하기로 했고, 14일에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12개이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항목을 61개로 늘리기로 했다. 내년 정부의 개정안이 시행되면 공공택지 분양원가 공개 항목이 대폭 늘어나고, 추후에는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원가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분양가격은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로또 분양 열풍만 더욱 거세질 수 있다”며 “분양가 산정 과정에서 얼마든지 건설사들의 꼼수가 나올 수 있고, 이를 소비자들이 판단하기도 사실상 쉽지 않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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