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겨내면 그저 '0과 1'의 나열일 뿐

북소리부터 '비트의 세계'까지
정보와 관련한 모든 이야기들
역사·이론·홍수 키워드로 풀어
생성·분실도 과잉정보시대
더 큰 갈증·욕망 안겨주기도
………………………………
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656쪽|동아시아
  • 등록 2017-01-25 오전 12:25:00

    수정 2017-01-25 오전 7:25:09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크기 4.5㎥에 무게가 15t. 부품 2만 5000개를 촘촘히 박아넣은 설계도는 37㎡. 거추장스러워 이젠 잘 들고 다니지도 않는 계산기의 시원이라 할 ‘계산기계’의 생김새가 그랬다. 처음 고안한 이는 찰스 배비지(1791∼1831). 과연 그 기계가 세상에 나와 돌아가긴 했을까. 안 됐다. 끝내 미완의 꿈이었다. 하지만 의미는 적잖다. 물질세계에서 추상세계로 들어서는 통로를 열어젖힌 셈이니. 결국 인간의 사고작용도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과감하게 드러냈으니. 비록 한판승에 물러났지만 계산기계와 씨름하던 배비지는 충만한 자신감으로 “어떤 생각도 소멸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엄청 반갑지만 엄청 무서운 얘기가 아닌가.

구구한 소리는 하지 말자. 정보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자료고 데이터고 상태이자 지식 아닌가. 이제 관건은 기호화다. 본격적으로 이런 생각을 피력한 사람은 전작 ‘카오스’(2008)를 통해 ‘나비효과’란 말을 널리 알린 과학저술가 제임스 글릭(63). 그는 정보의 전달매체보다 기호화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모든 정보는 0과 1의 1차원 배열로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보역사에 분기점이 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현란한 정보도 발가벗겨내면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논지다.

상황이 이러니 수학자가 뜨는 게 당연하다. 정보의 역사를 거스르면 꼭대기에는 당대 첨단의 정보과학을 쥐락펴락했던 수학자들이 포진해 있다. 의견 일치야 어려웠겠지만 이들의 지향은 같은 곳을 향했다. ‘아무리 대단한 사고·논리도 정보를 처리하는 행위’ ‘사고·논리는 계산, 계산은 알고리즘’ 등으로 말이다. 이들의 지향점을 물질적으로 구현한 것이 바로 ‘컴퓨터’란 거다.

저자는 여기에 숟가락을 제대로 얹은 셈이다. 수는 수학의 도구가 아니라 정보를 표현하는 궁극의 기호라고 했으니까. 역사와 이론, 홍수란 단 3가지 키워드로 소통·전달을 전제로 한 ‘정보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풀어놨다. 북소리로 의사전달의 천재성을 드러낸 아프리카 원주민을 시작으로 문자, 인쇄술, 과학혁명, 전신의 발명을 거쳐 종국엔 과잉정보가 처한 딜레마까지. ‘인포메이션’이란 한 단어를 축으로 지구는 물론 우주까지 돌린 책은 인터넷을 뉴스검색의 툴로 알고 스마트폰이 물어온 SNS의 가십이 세상일의 전부인 양 여기는 현대인에게 던진 ‘고수의 한 수’다. 정보가 무엇이게? 의미는 뭐고? 뭘 하자는 거지? 등. 시대와 장소를 종횡무진하는 질문과 답은 장구하게 이어진다. 정보·통신·수학·암호·언어·심리·철학·유전·진화·컴퓨터·양자역학까지 우습게 꿴다.

▲아프리카 북소리가 들린다면

18~19세기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에 발을 들인 유럽탐험가들은 눈앞의 신세계보다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원주민의 의사소통이다. 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그들이 온다는 것을 주민들은 알고 있더란 거다. 그저 북을 두들긴 거밖에 없는데. 물론 간단치는 않아 보였다. 불·해·달 이런 것을 북소리로 표현한다고 치자. 말로야 한 단어지만 북으로 두들길 때는 평균 8배나 많은 소리를 내야 한단다. 이른바 ‘말하는 북’에게 계속 말을 시켜야 했던 거다.

이 단서를 통해 저자는 ‘말하는 북’에 정보의 기초가 들어 있었다는 점을 끌어낸다. 두들김과 그 간격이 북소리의 기본이라고 한다면, 0과 1이 아니겠느냐는 거다. 바로 ‘비트’(bit)다. 여기서 진화한 형태가 모스부호라고까지 설명했다.

비트란 말은 어쩌다 ‘덜컥’ 생겼다. 1950년대 32세의 클로드 섀넌(1916∼2001)이 ‘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란 논문을 쓰면서 만든 신조어다. 재미있는 건 마치 수량화할 수 있는 정보라도 가진 듯 명쾌한 정의까지 내렸다는 것. ‘비트는 정보를 측정하는 단위’라고. 그런데 정말 그대로 됐다. 정보는 세상에 나왔고 비트는 정보의 양을 재는 절대단위가 된 거다. ‘비트가 낳은 인포메이션’은 허튼소리가 아니다. 그런데 그새 너무 많이 낳았다. 첫 탄생은 신통방통했으나 대책 없이 마구 쏟아지자 비명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과부하가 문제다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 진리다. 하나일 때는 귀했는데 10개가 되고 100개가 되니 갈증과 욕망만 커진다. 마구잡이로 쏟아진 정보는 이제 ‘무의미한 무질서’의 방에 들어섰다. 사실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가 진작에 들여다본 ‘바벨의 도서관’(1914)이 그랬다. 잠깐 다시 볼까.

미로 형태로 죽 늘어선 육각형의 방. 그 각각을 채운 건 책이다. 두께도 일정한 416쪽 분량의 책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책이 늘면 방의 개수도 따라서 늘어난다. 무한의 정보공간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수도 혹은 영영 못 찾을 수도 있는 거다. 어째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까. 모든 지식을 다 들여놨지만 쓸모없는 종이더미를 쌓아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단 뜻이다. 보르헤스는 결국 자신이 쓴 소설 위에 마음의 짐까지 덥석 올려놨다. “우주는 해명됐으나 우리는 유령이 됐다”고.

생성도 홍수고 분실도 홍수인 과잉정보시대. 저자는 한계 없음을 자랑하는 인터넷사이트도 바벨의 서가에 꽂힌 책과 뭐가 다르냐고 말한다. 유일한 해결책은 검색과 필터링이라고 했다. 그것이 당장 바벨의 도서관과 세계를 가르는 전부라고.

▲비트가 있다 고로 존재한다

‘정보에 관한 정보’를 한 보따리 던져놓은 저자의 결론에는 낙관도 비관도 없다. 사실 어느 쪽으로 기울든 걱정이긴 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탓이다. 릴레이식으로 1시간에 160㎞를 날아간다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북소리였는데 이제 마을사람들은 독해능력을 잃었다지 않나. 아이들이 북소리 대신 글을 배우면서부터다. 그새 전화도 들였다고 하고. 곧 스마트폰 시대도 열리겠지. 그런데 그들에게 글과 스마트폰을 포기하고 북소리를 고수하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낙관도 비관도 섣불리 꺼내놓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거다.

‘바벨의 도서관’까지 훔쳐봤지만 그렇게 묶어낸 책도 방대하다. 600쪽을 한참 넘긴 정보, 아니 비트의 나열이 가득하다. 이제껏 정보를 그저 통신망에 올라타 빙빙 돌아다니는 데이터로만 알았다면 좀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겠다. ‘비트가 있다 고로 존재한다’를 외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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