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 손질이 먼저다

  • 등록 2024-10-04 오전 5:00:00

    수정 2024-10-04 오전 5:00:00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을 투입한 시범사업에서 한 달 만에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수당 지연 지급, 숙소 통금(밤 10시)에 대한 불만은 그나마 쉽게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탈자 2명이 나온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들은 불법체류자가 될 공산이 크다. 임금 수준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유사한 일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시범사업 평가를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1200명 규모의 본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 상태에선 본사업 착수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시범사업은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추진 중이다. 그런데 핵심 이슈인 임금 수준을 놓고 주무부처의 의견이 엇박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8월 국회 토론회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임금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며 “현재는 너무 비싸 중산층에는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임금을 낮추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김 장관은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것은 헌법, 국제기준(ILO 협약), 국내법(근로기준법·외국인고용법) 등과 배치된다”고 말했다.

임금은 불법체류 가능성과 직결된다. 현재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지금도 이탈자가 나오는 판에 임금을 더 낮추면 다른 데 불법으로 취업할 우려가 크다. 정부가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난색을 보이는 이유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E-9(비전문취업) 비자를 받아서 입국했다. 서울시는 정부가 E-7(전문취업) 비자에 돌봄서비스업을 신설하길 바란다. 그러면 각 가정이 사적 계약을 통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직접 고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렇지만 권한을 가진 법무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저출생, 인구감소 시대에 외국 인력 활용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간병·육아 등 돌봄 서비스 수요는 내국인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는 시범사업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기초작업도 없이 지나치게 서둔 느낌이 든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사업은 정부와 서울시가 적어도 임금과 비자 체계부터 확정한 뒤 시작하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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