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정책 리스크는 고스란히 금융사 몫"

[금융포커스]신용사면 대책의 함정
역차별은 물론…리스크 금융사가 떠안아야
“취지는 좋으나 당국 일방통행만 따르는 꼴”
  • 등록 2024-01-15 오전 6:30:53

    수정 2024-01-15 오전 6:30:53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당정이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전격 결정한 ‘신용 대사면’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성실 취약계층의 신용회복에 나선다는 측면에서 의도는 좋으나 리스크는 고스란히 금융사 몫이 되어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서민·소상공인의 연체 이력을 삭제하는 신용사면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 이번 주 금융권과 협약을 체결하고 신용회복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신용사면 결정이 속전속결로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19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서민과 소상공인 지원책을 놓고 금융권과 머리를 맞댄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권 내부 곳곳에서는 철저하게 당국 주도로 신용 사면 정책이 이뤄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사면은 금융사와 협의한 것도 아니고 일방적인 시행이라 그저 결정에 따르는 분위기다”며 “금융권의 ‘이자장사’ 논란 이후로 관 눈치 보기 급급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번 대책의 대상이 되는 채무자들의 연체 이력 삭제로 금융기관도 자연스레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큰 이들을 대상으로 대출을 내줄 가능성이 생겨나 부실이 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신용 서민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저신용자와 고신용자 간 금리 역전이라는 시장 왜곡도 불러올 수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의 직접적인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저신용자가 고신용으로 둔갑할 우려가 분명히 있을 수 있다”며 “신용평가모델 개발하는 은행입장에선 과거 연체 데이터가 없으면 애로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 문제도 자연스레 뒤따른다”고 지적했다.

앞서 은행권이 발표한 2조원 이상의 민생금융지원방안에 이어 이번 신용사면도 총선 정책을 위한 금융권의 ‘팔 비틀기’라는 시각이다. 반면 당국은 금융권 내 해묵은 논란거리인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제도 개선안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당장 올해 적격비용 재산정 작업 시기가 도래했는데, 총선과 시기가 맞물리자 관련 논의는 ‘올스톱’된 채 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는 상태다.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는 선거철마다 나오는 단골 민생 공약인 만큼, 소상공인의 표를 좌우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당국도 섣불리 적격비용 재산정 개편안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읽힌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당국은 은행들에 가계부채 관리에 모범적으로 나서라고 하지만, 이번 신용사면으로 금융시장 가계부채를 다시 자극할 수도 있다”며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는 정치 논리에 따라 결정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정의 총선 전략에 금융권이 고스란히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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