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는 당장 먹거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업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시공사 입찰 경쟁에 뛰어들고 있지만 내부 리스크가 커 일부 건설사는 발을 뺄 고민을 하고 있다. 주택시장을 옥죄는 규제가 추가로 나와 ‘거래 절벽’이 현실화되고 금융 규제가 강화될 경우 자칫 자금 조달에도 차질이 빚어져 사업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장 침체에 공동사업 봇물… 건설사 ‘울며 겨자 먹기’ 참여
재건축 공동사업시행은 조합이 시행사가 되는 기존 도급제 사업과 달리 조합과 건설사가 함께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건설사가 조합을 대신해 금융권에서 조합운영비·토지보상비·이주비 등 사업비를 직접 조달하고 사업승인·관리처분계획 등을 함께 진행해 정비사업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된 후 ‘공동사업시행 건설업자 선정 기준’을 지자체 최초로 마련해 11월부터 시행에 나섰다.
그런데 올 5월까지만 해도 이 방식을 도입한 사업장은 없었다. 정비사업 속도가 다소 빨라질 수 있지만 아직 해당 제도를 적용한 사례가 없어 사업 불확실성이 크고 정비사업으로 얻은 수익을 건설사와 나눠야 한다는 게 조합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공동사업 시행자로 나서는 게 부담이다. 조합운영비·용역비·이주비 등 사업비는 건설사가 은행에서 직접 차입해 조합에 빌려주는(대여)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또 사업 기간이 계획보다 늘어나 추가된 이자비용이나 입찰 당시 건설사가 제시했던 이율을 초과하는 대출금리 역시 건설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강남권에서 재건축 사업 외에는 사업 물량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추가 정비사업 선점 효과 등을 고려해 무리한 조건이라도 조합 측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다”며 “최근 주택 경기가 좋지 않아 자칫 미분양이 날 경우를 대비해 내부에서도 입찰 참여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근 총 공사비만 2조 6411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걸려있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에 국내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1위인 삼성물산은 참여하지 않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수주 규모가 워낙 커서 참여를 고려했지만 주택시장 불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미분양 등 사업에 따른 손실 위험을 떠안을 수 있는 공동사업시행 방식이 부담돼 내부적으로 참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공동시행 떈 환수제 못 피할 듯… 헷갈린 규정에 혼선도
재건축 사업은 조합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거쳐 시행되는데 공동시행을 진행하면 시공사 선정 시기를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바로 직전 단계인 건축심의 이후로 약 3개월 가량을 앞당길 수 있다. 보통 사업시행인가 이후부터 관리처분계획 신청까지 최소 6개월여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올 하반기 공동시행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한 단지는 남은 일정상 시간이 빠듯한 상황이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진흥실 차장은 “공동시행 방식은 건설사들에게 불리한 조건이 많아 전체적인 정비사업 일정이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명확하지 않은 공동사업시행 방식 규정도 논란거리다. 강남 재건축 단지 가운데 공동시행 방식을 가장 빨리 도입한 서초구 방배14구역은 올 2월 이 사업 방식을 명시하지 않고 서울시에 재건축 사업시행인가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후 공동시행 방식으로 시공사 선정 공고를 내고 롯데건설을 최종 선정했다. 계획서 상에는 정비사업 시행자가 조합으로만 표기돼 있지만 실제 시공사가 함께 공동 사업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서울시 재생협력과 관계자는 “원칙대로라면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할 때 건설사를 공동사업시행자로 포함시키는게 맞다”며 “아직 사업시행인가 계획서 법정서식란에 건설사를 추가로 넣으라는 규정이 없어 별도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공동시행 방식으로 시공사가 선정됐다고 해도 사업 변경이나 설계 변경 등 돌발 변수가 생기는 경우 추가 분담금을 놓고 책임공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