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울타리 안 中企’ 벗어나는 법

  • 등록 2023-08-08 오전 6:15:00

    수정 2023-08-08 오전 6:15:00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논할 때 ‘자원’과 ‘역량’이 요인으로 꼽힌다. 기업의 성과를 결정하는 모형은 ‘자원→역량→경쟁력→성과’의 관계로 집약된다. 기업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해야 역량이 발달하고 경쟁력이 높아지며 그 결과로 성과가 향상된다는 논리다.

이런 모형을 적용해 중소기업의 성과가 저조하면 원인을 자원이 부족하고 역량이 미흡해 경쟁력이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중소기업의 자원을 보충해 주고 역량을 강화하면 경쟁력이 높아져 성과가 올라갈 것이라는 처방이 내려진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정책도 이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수립했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제도와 프로그램이 수없이 많은데 대부분은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인 자금과 인력 그리고 가장 미진한 역량인 기술과 판로에 중점을 둔다. 흔히 중소기업의 경영애로 4대 요인이라 부르는 자금, 인력, 기술, 판로에서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이 정책과제이며 이를 통해 경쟁력과 성과를 향상하는 것이 정책 목표다.

단순하면서도 당연한듯한 정책 논리가 초래하는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무엇보다 중소기업의 정부 의존성이 높아져 독자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경영환경이 악화해 어려움에 처하면 정부 지원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경제위기나 감염병과 같이 전체 중소기업을 위협하는 재난상황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위기를 극복하도록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금리가 급등하거나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하면 정부가 지원을 통해 충격을 완화해 줘야 한다. 하지만 개별 중소기업이 경영애로에 봉착할 때마다 직접적 지원을 제공해 구제해주면 자립정신이 약해진다. 경쟁력을 상실해 매출이 부진해도 스스로 회생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정부 지원에 의존해 연명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도 비슷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강자인 대기업이 약자인 중소기업과 상생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기업과의 협력관계가 달콤하다고 이에 안주해 대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나중에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을수록 협력 중소기업의 매출변동성이 커지고 영업이익률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정부 지원이나 대기업의 상생협력에 의존하는 것 자체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한다. 경쟁력이란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자원이나 역량은 경쟁력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자원이 많고 역량이 우수하다고 경쟁력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자원과 역량을 풍부히 보유한 대기업도 경쟁력을 상실해 시장에서 도태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대기업은 몇 번 실패해도 망하지 않고 버틸 여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한번 실패하면 그대로 재기불능에 직면한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대기업과 판이하게 다르다. 대기업처럼 중소기업이 미래 첨단 기술에 과감히 투자해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추고 대대적인 광고와 마케팅을 전개해 시장을 지배할 수 없다. 군사 전략의 관점에서 대기업이 전면전에 강하다면 중소기업은 유격전에 능숙해야 한다. 유격부대는 게릴라처럼 소규모로 광활한 지역을 민첩하게 이동하며 주위 환경을 현명하게 활용해 적의 약점을 치고 빠지는 전술로 승기를 잡아야 한다.

중소기업이 다른 대·중소기업과 비교해 차별적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틈새 제품을 선택해 제한된 자원과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범용품으로 경쟁하면 승산이 없다. 범용품은 경쟁자와 대체재가 많아 가격경쟁에 시달린다. 고객도 범용품을 비싸게 살 이유가 없어 납품 단가 인하 압력을 가한다.

제품 범위를 좁게 정의하는 대신 시장 영역은 넓게 접근해야 한다. 내수 시장에 국한하면 소수의 대기업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틈새 제품에 집중하면서 고객을 다변화하고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국내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을 기울여 세계시장에서 틈새 제품의 선도자가 돼야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경쟁력은 정부가 지원하거나 대기업이 도와준다고 얻을 수 없다. 중소기업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해야 강소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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