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매주 제출하는 과제를 채점하고 적절한 조언을 하는 게 조교의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수백 장의 주간 과제물을 읽고, 그에 따른 맞춤형 피드백을 주는 과정에서 이른바 ‘복붙(복사 후 붙
조교의 또 다른 주요 업무는 학생들의 학기말 리포트 도우미였다. 학생들에게 부여된 과제는 주로 수업 시간에 배운 ‘아동발달 이론’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직접 방문해 눈으로 관찰하고 대입시키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조교는 지역 어린이집, 유치원과 학생들의 방문 여부 및 스케줄을 조율하고 체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미국 중소도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 방문객을 아이들이 방해 받지 않을 정도로 제한했다. 규모가 제한되다 보니 자연스레 횟수가 늘어났다. 결국 그 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수 백 명의 관찰 과제로 인해 사실상 한 학기 내내 ‘감시 받으며’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의 관찰과제를 통해 학생들이 얻은 것은 단순히 이론을 대입하는 것 이상이었다. 교육과제, 점심, 간식 메뉴 등의 기본 정보는 물론, 그곳에서 일하는 선생님들과의 교류는 덤이었다. 심지어 몇몇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개선을 위한 제안 등을 역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5일 국회에서 ‘유치원 비리근절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아니, 열릴 뻔 했다는 게 좀 더 적확한 표현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원장 300여명의 고함과 야유, 단상 점거 등으로 인해 토론회가 중단 됐다.
지난 11일에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감사를 통해 비리 혐의가 적발된 유치원들의 명단과 그 비리 내용이 일부 공개됐다. 공개 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교육지원비 등으로 사용됐어야 할 이 돈이 홍어회, 막걸리, 명품 핸드백, 아들의 대학 입학금, 연기 학원비, 외제 자동차 보험료, 노래방, 숙박업소, 성인용품 등에 쓰였다고 한다.
매년 2조원이 넘는 돈이 정부 누리과정예산으로 사립유치원에 지원되고 있다. 이는 전부 우리가 낸 세금에서 비롯된다. 우리 세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그 목록을 살펴보니, 아이들에게 쓰여야 할 예산이 오용·악용됐던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사회적인 적응능력을 키우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는 시기다. 이 시기 지능과 언어능력이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발달하며, 식사·수면·신변처리·옷 입기·청결 등 인생의 기본적 습관이 형성 돼 자리 잡는다.
이 시기의 교육은 어찌 보면, 우리 삶에 대입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관심에서 시작된 다양한 ‘감시의 눈’이 입법으로, 제도로, 또 문화로 자리 잡아야 마땅한 이유다.
물의 끓는점과 얼음점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가 정점을 찍고 있는 지금, 사립유치원 회계관리시스템과 다양한 ‘감시의 눈’이 제도적으로 구축되고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