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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5시 서울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앞에 소녀 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길게 줄을 섰다. 영화표가 아닌 팝콘 세트를 사기 위해서다. ‘워너원 콤보’는 이날 전국 CGV 110여개 극장에서 한정판으로 출시됐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의 피규어가 달린 컵을 손에 넣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냈다.
굿즈(goods) 시장이 불경기 유통업계 숨통을 틔워줄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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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건물에는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의 굿즈를 선보이는 매장 ‘SUM(썸)’도 입점했는데 이 매장은 2014년 6월 문을 연 이래 줄곧 매출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CJ그룹과 함께 CJ오쇼핑의 화장품 브랜드 ‘셉(SEP)’, CJ E&M의 인기 프로그램 ‘윤식당’ ‘프로듀스101’ ‘신서유기’ 등과 관련한 상품을 이르면 이달 말 한 자리에 모아 선보일 계획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단독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티몬은 워너원 공식 MD 상품인 교통카드와 피규어 키링(열쇠고리)을 독점 판매했고, SK플래닛이 운영하는 11번가는 지난 5월 엑소 콘서트 응원 상품을 온라인 단독 판매해 하루 만에 완판(완전판매)을 기록한데 이어 걸그룹 레드벨벳, 보이그룹 샤이니 멤버 태민의 콘서트 굿즈를 온라인 단독으로 예약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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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것이 ‘이니 굿즈’다. 이니 굿즈는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인 ‘이니’에 상품을 뜻하는 ‘굿즈’를 합친 말이다. 이니 굿즈의 품목은 다양하다. 점퍼부터 텀블러, 우표, 찻잔, 시계 등이 익히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청와대 기념품인 시계와 찻잔은 시중에서 살 수 없다는 희소성 때문에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때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선 원가 4만원인 문 대통령 시계를 77만원에 판다는 게시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가 2만3000원인 문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첩은 4배 비싼 1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니 굿즈 대부분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문 대통령 사진으로 액자 등을 만들어 소장하는 ‘셀프 굿즈족’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문 대통령 소재의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등장했다. 이 쇼핑몰에선 문 대통령 지지자 사이 유행어인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기회는 평등하다’ 등의 문구가 그려진 배지, 모자, 마스크 등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이니 굿즈 신드롬은 역대 정부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정치 팬덤 현상은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출판계와 공연, 영화계에서도 굿즈는 소비자를 서점과 극장으로 끌어 모으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잘 만든 굿즈는 신간 또는 신작 홍보는 물론 매출에까지 영향을 준다.
2014년 도서정가제 도입으로 어려움을 겪은 출판계는 굿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최근 극장가는 ‘스페셜 굿즈 상영회’를 열어 한정판 굿즈를 선물하는 행사를 자주 선보이고 있다. 영화 제목 또는 일부 장면을 활용한 문구세트, 생활용품 등을 별도 제작해 선보이는 방식이다.
국내 굿즈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연간 1000억 원대로 추산되고 있다. 올해는 품목이 다양해지고 주 소비층 역시 기존 10~20대에서 30~40대로 확산함에 따라 1300억~1500억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승훈 큐딜리온(중고나라 운영사) 미디어전략실장은 “굿즈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중고나라도 지난 6월부터 굿즈 카테고리를 세분화했다”며 “굿즈는 특정 인물이나 콘텐츠, 브랜드와 연관된 상품을 일컫는데 무형의 콘텐츠 혹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대상을 물질로서 기억하고 간직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가치소비가 확산하고 있는 데다 개개인이 심취하는 대상의 폭도 넓어져 앞으로도 굿즈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