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인문학 콘서트’, ‘길 위의 인문학’ 강좌가 유행한 것도 몇 년 새 일이다. 인문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상표가 됐다. 대학 사회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인문학이 위기라는데 출판과 강연 시장에서는 인문학이 활황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은 ‘적극적 가치’, ‘사는 일에 대한 통찰과 반성’을 뭉뚱그리는 삶의 기술로 통한다. 그 배경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아마도 반세기 넘게 이어진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대한 반발이 꽤 작용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해온 군사문화 우위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인문학 열기는 역설적으로 죽어가는 정신에 대한 마지막 배려 같기도 하다. ‘인문적 환상’은 암 환자에게 투여하는 진통제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러구러 인문학의 정석은 아쉽게도 현실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 오히려 이와 정반대 길로 가는 사이비 인문학이 위세를 떨친다. 강연장이나 서점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주로 소모되는 인문학은 뭐에든 접붙였을 때 이윤을 더 진하게 내는 핵심 가치로 이해되고 있다.
국정 기조에도 이런 가짜 인문학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은 아닌가, 고개를 흔들게 되는 요즈음이다. ‘문화 매력 국가’를 지향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문화 정책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몇 년 한국 학술출판시장에서 오용된 인문학이 그러했듯, 전략 전술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문화는 민주 시민사회를 병들게 한다.
전 지구를 인간 소멸의 공포에 떨게 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인류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징후와 암시를 받았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안에 떨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벌써 잊었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쓰디쓴 고통의 교훈을 그렇게 쉽게 떨쳐버릴 수는 없다.
수천 년 우리 안에 전제돼온 통념이 무너지면서 인류 앞에는 매 순간 이에 대처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이 벌어진다.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기후 위기, 부(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세습자본주의 등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난제가 많다. 끊이지 않는 전쟁은 또 어떤가. 이런 문제 풀이에서 진정한 인문학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강의 힘이다. 더 늦기 전에 이 나라의 문화 정책 기조가 진짜 인문학의 모습으로 바로 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