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의무규정 잔뜩…은행들 "일단 피하자" 줄줄이 서비스 중단

이해 부족한 사람에 상품 못 파는데
'이해 부족' 기준 어디에도 안 나와
소비자에 제공해야 하는 핵심설명서
'핵심' 범위도 정해지지 않아 곤혹
시행도 전에 개정안 10개 이례적
그만큼 수정·보완 사항 많다는 뜻
  • 등록 2021-03-24 오전 6:00:00

    수정 2021-03-24 오전 6:00:00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데일리 김인경 이진철 기자]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이 25일로 다가왔지만 금융권의 혼란은 여전하다.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부터 여야가 내놓은 개정안만 10개에 달한다. 세부내용은 더 ‘깜깜이’다. 감독규정은 시행 불과 5거래일 전에 발표된 데다 구체적인 시행세칙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다.

불만이 커지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직접 금융권의 준비 부족과 적응 기간 등을 고려해 6개월간 유예기간을 두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불확실한 금소법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일단은 최대한 몸을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자칫 금융 소비자 보호보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시작부터 ‘반쪽’…시행세칙도 없이 개정안만 봇물

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여당에서 6개, 야당에서 3개의 금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정무위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역시 금융교육을 강화하는 금소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공동 발의 의원들과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윤 의원은 현행 금소법에 ‘금융교육의 중요성’만 강조돼 있을 뿐, 금융교육의 정의나 실시 방안 등이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국회에서도 법이 본격 시행되기도 전에 개정안이 10개 이상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수정하고 보완할 내용이 많다는 이야기다. 금융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권에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하지만 금융상품 판매 현장의 혼선만 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금소법의 불안은 탄생 시점부터 예고됐다. 금소법은 이명박정부 시절이던 2011년 첫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는데 실패했다. 그러다 라임사모펀드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등의 문제가 발생하며 20대 국회에서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20대 국회 한 달 남은 지난해 3월이었다. 라임사모펀드와 DLF 사태 등으로 금융소비자 피해가 너무 심한 상황이라, 일단 법안부터 통과시켰다. 논의과정 내내 쟁점이었던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증책임 전환, 집단소송제 등은 빠졌다. 법 내부에 모호한 개념이 여전히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소법 42조에는 2000만원 이하를 ‘소액분쟁’이라고 규정하지만, 2000만원이 소비자가 청구하는 금액인지, 금융사가 지급해야 할 금액인지 등은 명확한 규정이 없는 식이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20대 국회 말미라 일단 법안을 통과시킨 후 쟁점들은 21대 국회로 미뤄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애초에 ‘반쪽짜리’ 법안으로 출발했다는 뜻이다. 금소법 통과 후 1년이라는 시간동안에도 허송세월을 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그래픽=이동훈 기자)


비대면 상품가입 유도 ‘몸사리기’…고령층 소외 우려

금소법 시행령에 따르면 금융상품 판매업자는 ‘6대 판매 규제(적합성·적정성·설명의무·불공정 영업금지·부당권유금지·광고 규제)’를 따라야 한다. 위반한 금융사에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고, 판매 직원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을 수 있다.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이 새로 도입돼 소비자는 위법한 계약이라면 5년 안에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불완전 판매가 아니라는 입증도 금융사가 해야 한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시행령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판매규제 조항에 새롭게 포함되는 ‘상품 숙지의 의무’가 대표적이다. 은행 창구 등 판매업자는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에게 상품을 권유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해가 부족한’ 수준으로 어디까지 봐야할 것인지 여전히 모호한 상황이다.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핵심설명서’ 역시 ‘핵심’의 범위는 없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일반적인 상품설명서와 핵심설명서의 차이가 무엇인지 등 혼선이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일단 ‘걸릴 만한 것은 하지말자’ 식이 돼 버린다”라고 하소연했다.

실제 KB국민은행은 스마트텔러머신(STM)에서 입출금통장을 개설하는 서비스를 4월 말까지 중단하기로 했다. 금소법이 시행되면 ‘설명의무’를 지키기 위해 고객에게 약관을 설명하고 교부해야 하는데 현재 시스템에서는 이메일로 전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도 인공지능(AI) 로보 어드바이저인 ‘하이로보’ 신규 거래를 25일부터 5월 9일까지 한시 중단하기로 했다. 금소법 시행으로 하이로보 일반펀드 및 개인연금펀드 신규·리밸런싱·진단거래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아져서다.

은행 등이 창구에서 상품을 판매하지 않고 모바일 등 비대면 거래로 고객을 유도하는 ‘몸사리기’에 나선다면 고령층이 상품 선택에서 소외 받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업계는 금소법 시행 초기 몸사리기로 혁신적 서비스나 상품을 내놓기 힘들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가이드라인 등 하위 법 체계에서 자세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해줘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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