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람도 아닌 벽을 향해 던진 물컵이 쓰나미로 되돌아와 한진 일가를 덮쳤다. 물컵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조씨 일가가 벌여온 갑질에 대한 폭로가 줄을 이었고 경찰에 이어 관세청, 검찰, 출입국당국까지 나섰다. 죄명도 폭행, 밀수, 탈세, 배임, 횡령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동안 쌓은 업보의 결과이자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최악의 대응 탓이다.
‘갑질’ 한진의 ‘삽질’ 대응을 결정적 장면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 장면부터 한숨이 나온다. 사과는 당사자에게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문제를 인지한 시점에 곧바로 해야 한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조 전 전무는 그제서야 회사 홍보실을 통해 당사자들에게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로 사과를 전했다고 짧게 해명했다.
뒤늦게 내놓은 사과문은 사과 한줄에 해명은 A4지로만 5장짜리 분량이었다. 심지어 ‘사실을 인정하고 뉘우친다’고 해놓고는 그동안 제기된 18가지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잘못한 게 없다면서 뭘 인정하고 왜 뉘우치겠다는 건지 모를 사과문이다.
사과는 얼굴을 보면서 해야 한다. 물컵은 얼굴을 보면서 던지고 사과는 문자로 한다? 갑질 사과다.
오너일가 문제로 여러차례 곤혹을 치룬 모 그룹 임원는 이렇게 돌이켰다. “오너 일가와 관련한 문제가 터지면 멀리 해야 할 부서가 법무팀이에요. 오너 입장에선 ‘법적으로는 책임없다. 사과하면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말에 혹 할 수 밖에 없죠.”
불교용어 중에 ‘카르마’(Karman)라는 게 있다. 의역하면 ‘업보’(業報)다. 악업은 선업으로 갚아야 하고 현생에서 다 갚지 못하면 저승에서라도 갚아야 한다고 한다.
다만 천만영화 ‘신과 함께’에서 이정재가 분한 염라는 현실의 우리도 납득할 만한 해법을 내놓았다. “이승에서 진심으로 용서받은 자는 저승에서 처벌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