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 놈은 오르더라" 학습효과에..'블루칩' 아파트에 열광

'부동산 불패' 믿는 다주택자들
매물 안 내놓고 버티기 들어가
수요보다 공급이 감소폭 더 커
"시중 풀린 자금 많고 금리 낮아
공급 확대 없이는 집값 못잡아"
  • 등록 2017-11-28 오전 5:32:00

    수정 2017-11-28 오전 5: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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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성문재 김기덕 정다슬 기자] “특별히 거래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매물 한 두개가 팔리면 바로 호가(부르는 값)가 대책 발표 전 고점을 뚫기 일쑤입니다. 집값이 얼마나 오를 지 우리도 궁금합니다.”(서울 강남구 대치동 W공인 관계자)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무섭다. 거래는 뜸한 편이지만 호가 중심으로 집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서울 주택시장이 ‘거래량 감소 속 가격 상승’이라는 비정상적인 행보를 걷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거래량이 가격의 선행지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1월 셋째주(11월20일 기준) 서울 주간 아파트값은 0.18% 올라 전주(0.09%)보다상승폭이 두배로 커졌다. 양천구(0.50%)와 송파구(0.45%), 강남구(0.31%) 등 재건축 단지가 많이 몰려 있는 지역이 상승세를 이끌었다. 반면 거래는 크게 줄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들어 27일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량(신고일 기준)은 총 5113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89건이 거래된 셈이다. 하루 364건이 거래된 작년 11월과 비교하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10월 거래량(3815건)은 2013년 이후 4년만에 1만건 아래로 떨어졌다.

12년 만에 가장 강력한 규제책이라는 ‘8·2 부동산 대책’으로 거래량이 크게 줄었는데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 이유는 뭘까.

‘돈되는 아파트’에 수요 몰려…커지는 ‘블루칩 아파트 불패’ 신화

전문가들은 정부의 잇단 부동산 규제 강화로 아파트 매입 수요는 줄었지만 ‘부동산 불패’를 믿는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공급이 더 많이 줄어든 때문으로 보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수요보다 공급이 더 줄면 거래량이 감소하더라도 가격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은 “서울, 특히 강남권과 도심권은 여전히 수급이 취약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서울 주요 지역은 집값이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강한 이유다.

게다가 강남권 재건축 단지와 도심권 직주근접 아파트(역세권 단지) 등 ‘똘똘한’ 블루칩 아파트들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커졌다. 더욱이 재건축 물건은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서울에서 수억원의 수익(웃돈)을 보장하는 확실한 투자처로 꼽힌다. 강동구 둔촌동 오세요공인 서홍석 대표는 “거래는 예전만큼 원활하지 않은데 워낙 매물이 없다 보니 매수인 1~2명만 몰리면 가격이 오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몇 년간 돈이 묶이더라도 재건축 완료 후엔 자산 가치가 최소 2억~3억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매물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4월부터 시행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에 앞서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수요자들은 재건축뿐만 아니라 출퇴근이 편리한 도심권 역세권 새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박재전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서울동부지부장(성우부동산중개법인 대표)는 “직주근접형 아파트 단지를 잡으려는 대기 수요는 넘치는 데 매물이 많지 않다”며 “도심권이면서 역세권 새 아파트는 요즘 부르는 게 값을 정도”라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도 “내년 4월부터 시행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전에 강남의 ‘똘똘한 한 채’로 정리하려는 수요가 많아졌다”며 “무주택자들 역시 결국 집값이 오르는 서울에서 집을 사려는 경향도 뚜렷하다”고 말했다.

“10억원짜리 아파트도 매물 없어 못 사”

풍부한 유동성도 집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남영우 나사렛대학교 국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은행권을 통한 자금 조달 문턱이 높아지긴 했지만 시중에 이미 풀린 유동자금이 많고 금리도 아직 낮은 수준”이라며 “주택을 구입하겠다고 마음 먹은 실수요자라면 충분히 자금 조달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곽창석 도시와 공간 대표는 “10억원을 넘는 강남권 아파트를 매물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시중 유동성이 풍부하고 고액 연봉을 받은 전문직 종사자나 직장인 실수요도 많아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먹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 없어 결국엔 가격 조정될 것” 의견도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앞으로 지속될 지에 대해서는 전문가 의견이 엇갈린다. ‘거래 감소 속 호가 상승’은 실제 거래가격 하락의 전조라는 우려섞인 시각이 있는가 하면 집값 대세 상승의 징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원갑 위원은 “주택시장에서 호황과 불황, 혹은 건강도를 보여주는 지표는 거래량”이라며 “거래가 동반되지 않은 시장은 구조적으로 허약한 체질인 만큼 집값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수석부동산컨설턴트도 “시장 참여자들이 ‘전국구 투자처인 강남 집값이 떨어지겠냐’며 버티고 있지만 내년부터 시행될 대출 규제 강화로 수요는 점차 줄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로 매물이 늘면 매매가격도 조정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공급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시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집값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찮다. 함영진 센터장은 “서울은 향후 몇년 간 입주 물량이 많지 않다”며 “공급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서울 주요 지역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곧 발표할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대규모 임대주택 공급 확대나 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인센티브 방안을 획기적으로 담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로도 집값 잡기에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2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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