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 안되는 e북단말기…아마존에 안방 내줄판

국내 전자책시장 어디까지 왔나
콘텐츠 검색·결제·다운만 가능
'복제방지'로 기기연동 대부분 안돼
판타지·로맨스 등 장르소설에 편중
출·퇴근용 등 '특화 콘텐으' 필요
  • 등록 2015-05-21 오전 6:41:30

    수정 2015-05-21 오전 7:35:47

교보문고는 대한민국 e북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기획전 ‘더 히스토리 오브 더 케이이북’(The history of the K-eBook)을 오는 31일까지 서울 광화문점 삼환재에서 연다(사진=교보문고).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종이책의 대안이라는 e북은 어디까지 진화했을까.

e북은 이제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자체 개발한 e북단말기 ‘킨들’을 앞세운 세계 최대의 인터넷서점 아마존의 급격한 성장은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아마존의 한국상륙 변수는 물론 스마트기기의 광범위한 보급 등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면 국내 e북시장의 성장가능성은 무한하다.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 2014년 출판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e북 유통사들은 e북시장의 성장가능성을 2013년을 100%으로 봤을 때 2016년 145%, 2018년 234%로 예측하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다만 e북시장의 인프라와 콘텐츠구조는 아직 미비하다. 국내 100개 출판사가 참여했던 최대 e북업체인 북토피아가 2008년 불투명한 정산구조 등으로 파산한 이후에도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유통체계와 가격질서의 혼란은 물론 독자층도 부족하고 구매력도 미흡하다. 이 때문에 국내 출판사들은 여전히 e북시장 진입을 망설이고 있고 콘텐츠의 편중 현상도 여전하다. e북시장의 현황을 들여다봤다.

▲e북 인프라 투자부족…정부 유통구조 지원해야

국내 e북시장의 문제점(단위 %·자료=한국출판산업진흥원).
e북의 인프라는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CPND) 등 4개 섹터의 선순환구조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출판사가 생산한 양질의 콘텐츠가 플랫폼을 타고 네트워크 통신을 통해 독자가 쉽게 디바이스로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현재 플랫폼에서는 콘텐츠의 검색과 결제까지 가능하다. 또 통신을 통해 e북 콘텐츠 하나를 다운받은 데 채 60초가 걸리지 않는다. e북 전용단말기도 보급돼 있다. 교보문고의 샘이나 예스24의 크레마가 대표적이다. 단말기 이용자는 한 달에 두세 권 이상의 책을 읽는 헤비리더로 전체 e북시장의 40% 가량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한 이용사례도 대폭 늘었다.

하지만 전용단말기의 호환성은 여전히 문제다. e북 복제방지 자물쇠 역할을 하는 DRM(디지털저작관리) 구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공용 DRM 사용을 국내업체에 제안한 상태지만 큰 진전은 없다. 국내 e북 출판계의 주도권 다툼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인 아마존에 어부지리를 줄 가능성도 있다. 실제 국내 한 벤처기업이 만든 전자책 전문서점인 코끼리북(www.kokilibook.com)은 아마존과 연동된다. 여기엔 웅진씽크빅, 살림, 열림원, 오픈하우스, 북이십일 등 주요 국내 출판사 20여곳이 1500여권의 e북을 공급한 상태. 향후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계획하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대부분의 콘텐츠 플랫폼은 네트워크 구조인데 아마존의 e북단말기 킨들이든 교보문고의 샘이든 호환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함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소장은 “e북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유통시스템 개선은 필수”라면서 “e북 제작지원 비용으로 권당 30만원 정도를 지원하는 현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꼬집었다.

e북시장의 규모가 작고 대규모 투자가 어려운 것도 난제다. 국내 e북시장 규모는 콘텐츠와 전용 디바이스 판매를 기준으로 약 1000억원선. 게다가 e북시장에 진출했던 신세계 I&C(오도독), KT(올레이북), 삼성전자(삼성북스) 등 대기업은 지난해부터 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한 상황이다.

▲판타지·로맨스·무협소설에 편중…e북 콘텐츠 다양화 시급

e북시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오락용 콘텐츠가 압도적이다. 국내에선 판타지·무협·로맨스소설이 전체 판매량의 50%를 차지한다. 이는 주요 출판사가 아직 e북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 특히 e북이 종이책 판매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 출판사 편집장은 “e북시장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장르소설이 잘 팔리기 때문에 시급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고 설명했다.

최근 변화의 움직임도 있다. 한빛미디어는 IT 관련 서적을 e북으로 출간하고 있고 길벗은 종이책과 e북의 동시 출간율을 높이고 있다. 아울러 리디북스, 아이이펍, 북잼 등 중소형 규모 e북 전문사업자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북잼이 출시한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전집은 대표적인 성공작이다. 이후 세계문학이나 한국문학전집을 e북으로 내는 출판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계의 전자책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의 저자인 류영호 교보문고 디지털사업단 차장은 “e북 콘텐츠의 활성화를 위해 종이책과 e북의 동시 출간율을 높여야 한다”면서 “출판사가 e북을 만들 때 디지털에 특화된 콘텐츠를 많이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출퇴근 등 자투리 시간에 읽을 수 있도록 50페이지 이내 분량으로 여행정보, 생활상식, 건강, 요리 등의 콘텐츠를 기획할 필요가 있다는 것. 백원근 한국출판학회 연구이사는 “종이책과 e북을 함께 읽은 하이브리드 독자의 출현과 증가는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하이브리드 독서환경에 걸맞게 출판산업, 독서진흥정책, 연구활성화를 보다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한민국 e북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기획전 ‘더 히스토리 오브 더 케이이북’(The history of the K-eBook)이 열리는 있는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 삼환재에 전시된 다양한 형태의 e북 단말기(사진=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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