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결정은 그동안 여성계가 요구해 온 ‘전면 비범죄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 사회의 시대변화를 반영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금껏 낙태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한편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불합리한 규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헌재에 위헌 의견을 제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세계적 흐름도 마찬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한 5개국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번 결정으로 낙태를 둘러싼 논란이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됐다. 낙태죄가 없어진다고 해서 자칫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사태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나칠 수 없다. 처벌 근거가 없어지더라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생명체 보호라는 두 가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대체입법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무분별 낙태를 방지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