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동산 시장의 거대 암초로 떠오른 ‘세대 갈등’의 단면이다. 이 갈등은 가진 게 집 뿐인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695만명)들의 은퇴와 함께 점화된다. 핵심은 미래의 주택 수요다. 은퇴자들은 생계비 조달을 위해 집을 줄이거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더 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누군가는 은퇴자들의 집을 사서 이들의 주택 가격(자산)을 떠받쳐야 한다.
문제는 이들의 아들 뻘인 청년들이다. 집을 살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들 한다. 최악의 미래 시나리오는 ‘청년들의 주택 소비 감소→은퇴 쇼크→집값 폭락→일본식(式) 장기 침체’다. 기업 정년을 55세로 추산하면, 1세대 베이비부머의 은퇴는 이미 2010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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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관건은 젊은층의 주택 구매 의사와 구매력, 정부 정책의 실효성 여부다. 특히 베이비부머의 자녀로 954만명에 달하는 에코세대(1979~1992년 출생·954만명)를 부모 세대를 대체하는 주택의 주요 수요층으로 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수요층이다=주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수도권에 거주하는 에코세대 407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0%는 장기적인 주거 안정 등을 위해 집을 살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의지’가 있지만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전셋집에 거주하는 에코세대는 월 소득의 14%를 주거비로 내고 있다. 전세자금 대출 상환액이 매달 46만원에 이른다. 평균 1억3226만원짜리 전셋집에 사는 이들이 부모 지원 없이 집(3억1325만원)을 사려면 종전 빚을 포함해 총 1억9072만원을 대출받아야 한다. 시중은행 대출 상품을 이용하면 빚 상환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생애 첫 주택 구입자 지원을 이용하는 경우다. 1억8323만원을 대출받으면 향후 5년간 이자 월 50만3883원(금리 연 3.3%)을 부담하게 된다. 이자만 따져보면 전세자금 대출 상환액과 큰 차이가 없다. 작년 정부의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20·30대의 주택담보대출액이 증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가 부모 세대를 대신해 대출 문턱을 낮춰 부족한 구매력을 보조하자 자녀들이 호응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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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돈은 늘었고, 은행 금리는 싸졌다. 부동산114는 베이비부머가 주택 시장 진입기 1인당 평균 668만원을 증여받은 반면, 에코세대는 1억3500만원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국세청의 증여세 통계상 총액을 증여받은 사람 수로 나눈 값이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도 에코세대의 증여액이 더 많다. 여기에 1980년 약 20%에 육박했던 대출 금리가 2012년엔 5.4%까지 낮아졌으니 주택 구입 자금 마련이 훨씬 쉬워졌다는 주장이다.
장용훈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에코세대는 집은 ‘못’사고 있는 게 아니라 ‘안’ 사고 있는 것이다. 베이비부머가 은퇴를 시작하면 집값이 폭락할 거라는 예상이 많지만, 에코세대는 이들을 대체하는 부동산 시장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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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2012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체 에코세대의 42.5%는 보증부 월세로 거주한다. 전세는 31%, 자가는 15.4%에 불과하다. 아직 모은 자산이 적으니 상식적으로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보증부 월세의 주거비 부담이 전세나 자가보다 크다는 점이다.
서울연구원의 분석 결과, 서울에 사는 전체 보증부 월세가구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은 평균 20.06%였다. 월급 200만원 중 40만원을 월세로 낸다는 얘기다. 전세가구(14.35%)보다 1.4배 높다. 임대료를 뺀 소득이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렌트푸어’의 30%는 30대 이하다.
이렇다 보니 청년층의 ‘월세→전세→매매’로의 생애주기별 주거 상향 이동은 쉽지 않다. 부모 지원이 없다는 전제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에코세대를 분석해 보니,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은 순수 월세(21%)와 보증부 월세(18%) 거주자가 가장 높았다. 이어 자가(16%), 전세(14%) 순이다. 자산을 불리기엔 전세가 가장 유리하지만, 그 진입 문턱이 너무 높다.
청년들이 쥔 선택지는 월세와 (대출을 낀) 자가, 둘 중 하나다. 주거 유형만 다를 뿐, 모두 고비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내 집 마련의 중간 사다리이자 환승역이었던 전세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청년층이 안정적으로 자기 집을 가진 중산층으로 발돋움하기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수도권 집값’은 비싸다=에코세대에게 집값은 정말 대출을 끼고 사도 괜찮을 만큼 저렴할까. 여기엔 ‘평균의 함정’이 있다. 부동산114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국 평균 아파트값을 모으는 기간은 에코세대(80.5개월)가 베이비부머(85.3개월)보다 짧다.
전체 에코세대의 46.4%(444만명)가 서울·수도권에서 살고 있다. 지방 거주자가 아닌 한, 에코세대의 소득 대비 집값이 저렴하다는 건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이들 절반에게 부모세대가 끌어올린 집값은 자기 소득 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원리금(집값)이 줄지 않는 한, 대출을 낀 주택 매입이 소비 부진, 나아가 내수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 “세대 전쟁은 없다”=정부는 상황을 낙관한다. “세대 전쟁은 시장을 단편적으로 보고 하는 말이다. 문제는 (전체적인) 주택 수요와 공급이다. 일본은 과거 가구 증가율과 성장율이 둔화된 1970~1990년대에도 주택 공급을 크게 줄이지 않았다. 이런 과잉 공급이 장기 불황의 원인이 됐다. 반면 우리는 주택 공급 계획을 연 50만호에서 39만호로 줄였다. 겨울이 온다는 걸 알고 미리 대비했다. 얼어죽지 않는다. 청년층과 부모세대가 합리적으로 판단해 시장 흐름을 결정하게 될 거다.”
장우철 국토교통부 주택기금과장의 설명이다. 부동산시장을 세대별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갈등의 장이 아닌 수급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장으로 보는 시각이다. 다만 정부도 “빚 내서 집 사라”고 부추겨 베이비부머의 가계부채를 자녀세대에 넘기는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시선으로부터는 자유롭지 않다. 정부가 지난해 완화했던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 대한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올 초부터 다시 부활시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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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 속,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위해’ 집을 사야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공교롭게도 생애 첫 주택 구입 자금과 1%대 모기지의 주 이용자는 청년층이다. 부동산시장의 잠재된 갈등 요소를 외면한 채 대출 문턱을 크게 낮추는 모습을 두고, 정부가 청년들을 주택 정책의 목적(주거 안정)이 아닌 수단(시장 정상화)으로 여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에코세대의 경우 소득 자체가 불안정한 게 근본적인 문제”라며 “고용 불안 해소와 소득 증가, 복지 증대 등을 통해 젊은 세대가 주거 안정을 꾀하면서 실질적인 주택 구매력도 키울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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