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기주 김형환 기자] 김모(65)씨는 지난 7월 ‘김씨의 명의로 카드가 배송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씨는 이후 상담원의 안내에 따라 피싱 조직이 문자로 보낸 앱을 깔았고 보이스피싱에 걸려들었다. 이후 수차례 경찰, 검찰을 사칭한 조직원들의 전화를 받은 김씨는 나흘간 무려 15억7600만원을 범죄조직에 송금했다.
60대 이상 거액의 노후자금을 노리는 피싱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올해 들어 3년 만에 다시 피해액이 급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액 보이스피싱이 먹혀들지 않자 조직적으로 잘 짜여진 ‘극본’을 토대로 1억원 이상 거액의 ‘한탕’ 피싱을 노리는 방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 (그래픽=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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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경찰청이 11일 채현일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21년 7744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2년 5438억원, 2023년 4472억원 등으로 감소세를 보여왔지만 올해들어 급반등하기 시작해 지난 9월까지 5173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경우에 따라선 2021년 수준까지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3년 만에 피해액이 다시 급증한 원인은 피싱범죄의 양상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과거 몇 년간 소액결제를 유도하는 방식 등을 이용한 100만원 미만의 피싱범죄가 성행했는데 올들어서는 소액 피싱범죄가 지난해 대비 절반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반면 피해액이 1억원이 넘는 초고액 피싱범죄가 올해 두 배가량 늘었다.
피해액이 큰 피싱범죄는 주로 60대 이상 취약계층을 상대로 이뤄진다. 단순히 전화 한 통으로 범죄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며칠간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진행되기 때문에 의심을 한다고 해도 벗어나기 힘들다. 이는 주로 김씨의 사례처럼 ‘카드가 배송됐다’는 식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스마트폰에 ‘악성앱’을 설치하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악성앱이 깔린 뒤에는 피해자가 경찰이나 금융사에 전화를 해도 범죄자들이 이를 가로채 받을 수 있다. 경찰이 아닌 범죄자들에게 전화를 하는 셈이다.
피싱범죄의 진화에도 이를 막을 법제도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범죄 유형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피싱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지만 법에서 규정한 ‘보이스피싱’이라는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 사기 피해는 초기 대응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경찰청은 ‘사기방지기본법’을 추진했지만 지난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라며 “범죄자들은 피해자의 고립을 노리기 때문에 수상한 전화는 반드시 의심하고 주변과 상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