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9부(김시철 이경훈 송민경 부장판사)는 검찰공무원 A씨가 검찰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검찰은 2019년 5월 A씨에 대해 성희롱과 우월적 지위·권한 남용 등의 사유로 해임 처분했다. 징계 처분서에는 최소 16명에 달하는 피해자 및 목격자들이 모두 비실명 처리돼 있었다. A씨는 징계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징계사유가 인정되고, 징계양정도 적정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에서의 쟁점은 피해자와 목격자에 대한 비실명 처리가 A씨의 방어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A씨는 “익명의 피해자 등의 진술에 기초해 편향적 감찰 조사를 하는 등 방어권을 침해한 만큼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피해자 특정’ 법원 석명 요청 거부
법원은 A씨의 반대신문권 보장을 위해 검찰에 피해자나 목격자들의 인적사항에 대해 여러 차례 석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피해자 인적사항을 불특정 해 증인신문을 하지 않아도 A씨 방어권이 침해되지 않는다”며 끝내 불응했다.
피해자들의 진술이 징계의 핵심 증거인 상황에서 A씨에게 피해자 진술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무기대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등 방어권이 실질적으로 침해된다는 결론이었다.
특히 최근 헌법재판소가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인정하도록 한 성폭력범죄처벌 특례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한 점도 판단의 근거로 됐다.
재판부는 “미성년 피해자가 문제 된 헌재 결정에서조차 반대신문권을 박탈하는 것은 헌법적 차원에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이 사건은 성인이 피해자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로서는 피해자·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등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법으로 방어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며 “비실명 처리로 개별 비위사실과 관련한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효과적으로 다툴 방법이 사실상 없게 돼 방어권 행사에 중대한 제약이 따른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피해자를 특정하라’는 법원의 석명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검찰 태도도 꼬집었다. 재판부는 “법원 입장에선 피해자 증인신문 등을 통해 당사자 주장의 진위를 가리고 의문점을 해소할 필요가 있음에도 검찰 측이 피해자를 전혀 특정하지 않아 심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법정에서 피해자 신원 누설을 금지하고 성폭력 확인서를 가명으로 작성할 수 있도록 한 ‘대검찰청 성폭력 예방 및 처리지침’을 근거로 법원의 석명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검찰 자체 행정규칙에 불과해 법원에 구속력이 없다”며 “A씨에겐 헌법상 권리에 근거해 피해자 등에 대한 증인신문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