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환승구역이 금괴 밀수 천국된 까닭은?

[인천=이데일리 이종일 기자] 최근 인천공항에서 일본으로 금괴 밀수를 시도하려던 운반책들이 세관 검사를 앞두고 금괴 7개(3억여원 상당)를 공항 쓰레기통에 버린 일이 드러나 화제가 됐다. 밀수 의뢰인을 속여 금괴를 훔친 운반책과 인천공항 등을 통해 금괴 4만개(2조원 상당)를 밀반입해 수백억대 부당이득을 남긴 밀수범 일당이 붙잡히기도 했다.

이처럼 금괴를 밀반입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인천국제공항이 ‘금괴 밀수 창구’로 전락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금괴 밀수의 천국이 됐을까?

부산지검이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A씨 등 10명이 보유하고 있던 금괴. (사진 = 부산지검 제공)

금괴 밀수 ‘홍콩→한국→일본’…日 소비세 인상 여파로 급증

보통 1㎏짜리 골드바 1개의 가격은 5000여만원선이다. 이 금괴를 일본으로 정식 수입할 경우에는 관세와 소비세가 붙어 가격이 뛴다. 2014년 일본정부가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하면서 금괴에 붙는 세금이 높아진 까닭에 밀수로 세금을 피해 얻는 차익도 커졌다. 밀수꾼들은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홍콩에서 금괴를 사들인 뒤 일본으로 밀반입하다가 일본 정부가 홍콩발 금괴 밀수 단속을 강화하자 한국을 경유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금괴 밀수는 일본을 오가는 비행기가 많은 인천공항에서 주로 이뤄진다.

A씨 일당은 2015년 7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1년 6개월간 2조원대 금괴를 일본으로 밀반입했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홍콩에서 사들인 금괴를 인천공항과 김해공항 환승구역으로 반입한 뒤 한국인 여행객을 통해 일본에 반입하는 수법을 썼다.

A씨 일당은 일본 세관이 홍콩에서 들어오는 비행기에 대해서는 금괴밀수 단속을 철저히 하는 반면 한국발 비행기는 상대적으로 단속이 느슨한 점을 노려 한국인 승객들을 운반책으로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행 왕복 비행기표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유인해 국내에서 운반책을 모집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공짜여행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올리고 일본 세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주로 가족이나 연인 여행객들을 운반책으로 동원했다.

이들은 국외지인 환승구역에서 금괴를 주고 받아도 세관이나 수사당국이 이를 단속할 근거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환승구역내 화장실 등에서 금괴를 주고 받았다.

부산지검은 고심 끝에 A씨 일당을 ‘불법중계무역’ 혐의로 기소했다. 공항 환승구역을 이용한 금괴 밀수에 대한 첫 기소 사례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환승구역을 중간지점으로 삼아 홍콩과 일본을 잇는 불법 금괴 중계무역을 하고 있다고 보고 관세법상 밀반송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관세청은 국내 공항을 경유지 삼아 일본으로 금괴를 밀반입하는 사건이 급증하자 올 1월 공항마다 ‘금괴전담특별수사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환승구역내에 금괴를 들여왔다고 해도 아직 국가간 경계를 넘어 국내에 반입한 게 아니어서 법적으로 단속할 권한이 없다”며 “부산지검이 단속한 사례를 연구해 공항 환승구역이 금괴 밀수 범행장소로 활용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인천공항 이용한 국내 금괴 밀수도 증가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통해 국내로 금괴를 밀수하다 적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받은 ‘전국 세관별 금괴 밀수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인천본부세관이 2012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인천공항, 인천항 등에서 적발한 금괴 밀수는 254건이다.

대부분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금괴를 들여오다 덜미를 잡혔다. 연도별로는 △2012년 9건 △2013년 22건 △2014년 23건 △2015년 81건 △2016년 24건 △지난해 8월 기준 95건이 적발됐다. 전국 6개 본부·직할세관 가운데 인천본부세관이 금괴 밀수 적발 1위다.

이 역시 홍콩과 일본을 연결하는 금괴 밀수 경유지로 국내 공항을 활용하는 밀수범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윤 의원은 “금괴 밀수가 활개를 치면 국내 조세정의가 크게 훼손된다”며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 밀수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법 개정 등을 통해 공항 환승구역을 이용한 밀수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