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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무용수는 또 다른 무용수를 만나 활이 된다.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지는 활시위처럼 두 사람의 몸짓과 거리도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한다. 거문고의 중저음, 가야금의 맑고 청아한 소리가 이들의 춤과 조화를 이룬다.
막이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면 스무 명의 무용수가 회전무대 위에서 원을 이룬 모습으로 등장한다. 회전이 멈추자 이들은 서로 다른 춤을 추며 흩어졌다가 뭉치기를 반복한다. 전통놀이 ‘강강술래’를 연상케 하는 무용수의 움직임이 오르골 음악과 함께 낯설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통과 현대가 음악과 무용을 매개로 만난다. 오는 25일과 26일 이틀 동안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오르는 ‘춤의 연대기’다. 국립국악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이 함께 제작한 공연이다. 전통의 재발견과 현대무용의 실험과 모색을 통해 ‘전통의 현대화’와 같은 기존 프레임을 넘어선 협업을 도모하기 위해 기획했다.
‘조절하다’는 현대무용과 전통음악의 만남을 보여준다. 그동안 ‘활’이란 소재, ‘활쏘기’란 움직임에 대해 오랜 관심을 가졌던 박 안무가가 국악 현악기 연주법 중 하나인 농현(왼손으로 줄을 짚어 원래의 음 이외의 여러 가지 장식음을 내는 기법)을 소재로 삼았다. 몸을 활로 설정하고 농현이란 요소를 더해 다양한 몸짓을 보여준다. 무용수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조절 속에는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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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도 성격도 전혀 다른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건 전통과 현대의 단순한 만남을 넘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작업 덕분이다.
시연회를 마친 뒤 만난 안 감독은 “흔히들 전통은 전시관에 넣어 둔 박제처럼 여긴다. 하지만 전통은 재해석하는 순간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전통은 보존도 중요하지만 변형과 다른 해석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의 변형과 해석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제목처럼 ‘춤의 연대기’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