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훈이 라면을 먹는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다 읊조리고, 마치 안 내려올 듯 자전거에 올라타(‘자전거 여행’) 바다까지 배회하고선(‘바다의 기별’) 이제 라면 한 그릇을 차지했다.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 얘기다. 오랜만에 다시 본 그의 글은 여전히 깊은 안온이면서 날선 반성이다. 쌀쌀한 날씨에 채비를 서둘러야 할 것 같은 불안이면서 덧입힐 든든한 후덕이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은 소란이 기분을 방해한다. 책 출간과 맞물린 어줍은 이벤트 탓이다. 출판사는 ‘라면을…’의 예약판매를 시작한 첫날부터 온라인서점 5곳에서 사은품 증정을 시작했다. ‘김훈 작가 친필 사인본’ ‘김훈 문장이 새겨진 양은냄비’ ‘김훈 작가가 즐겨 먹는 라면’ 등 3종 세트를 선착순 예매 독자에게 안겨준 거다. 반응은 뜨거웠다. 양은냄비의 우월한 존재감 덕인지, 덤 좋아하는 민족성에 잘 얹은 라면 때문인지, 작가의 친필 사인본에 정말 혹한 것인지. 이틀 뒤 출판사는 1800개 사은품이 48시간 만에 동났다고 발표했다. 서점에 책이 채 돌기도 전에, 만년 출판불황이란 탄식을 무색케 한 단 이틀 만의 1800부 완판소식이었다. 그런데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일각에선 도서정가제 위반을 들먹이는 모양이다. 맞다. 문제 삼을 만하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책 가격의 5% 내에서 경품이나 마일리지 상품권 등을 제공할 수 있게 했고, ‘매운라면’이나 ‘양은냄비’는 누가 봐도 책값 1만 5000원의 5%인 750원을 훌쩍 넘긴다. 문학동네라는 거대권력도 거슬린다. 창비·문지와 더불어 문학동네는 한국문학출판의 빅 3가 아닌가. 점잖게 간다고 해도 구축해둔 작가군과 인프라로 자칫 오비이락이 생길 수 있는 위치다. 더군다나 신경숙 표절파문으로 일거수일투족이 시선을 끌고 있지 않은가.
출판계에 사은품이 없진 않았다. 아동물에 끼워주는 필기구나 장난감, 잡화 관련 책에 든 견본품. 차가 주제인 도서에 찔러준 ‘우엉차’ 한 포까진 받아봤다. 그럼에도 사은품 덕에 예매 이틀 만에 베스트셀러를 꿰찼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어떤가.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배불리 먹어도 늘 허기진 이들의 가슴을 설설 달구는 위안. 굳이 그 옆에 진짜 라면을 붙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양은냄비가 없었으면 더더욱 좋았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