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를 보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가 차로 30~40분 정도 거리다. 나머지 두 곳은 대략 한 시간 내외가 소요되는 듯하다. 일반 고등학생도 등하교에 2시간 이상이 소요되면 지치기 마련인데 하물며 특수반인 경우는 어떻겠나.
학교 이름 3군데를 써내니, 한편으론 ‘그러면 향후 3년 동안은 진학 신청서를 안 써도 되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발달장애인은 대학 진학이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정규교육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면 고단함이 더더욱 밀려온다. 이 때문에 진학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 ‘고졸 청년’이 되기 전까지 고등학교를 5년 정도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헛된 바람을 잠시 가지기도 했다.
이처럼 암담한 현실에 힘들어하는 청년들과 특수교육이 필요한 ‘더 힘든’ 청년들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 경쟁적으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청년지원 정책의 실질적 수혜 대상은 ‘대졸 취업 준비생’이다. 고졸 청년은 전체 청년의 20~30%라는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청년 정책’을 통한 배려는 먼 나라 이야기다. 이처럼 ‘고졸 청년’도 사실상 배제되고 있는데, ‘고졸 장애인 청년’에 대한 실질적 지원책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가 돼버렸다.
대학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 역설적으로 ‘그 흔한’ 대학 졸업장 없이 맞닥뜨리는 세상은 너무 험하고 힘겹다.
군 복무 이후 작은 무인경비업체 영업직을 했을 때는 세전 110만원의 월급을 받았고, 도로설비물 설치 영업을 했을 때는 한 달에 90만~120만원 정도 벌었다. 그의 꿈은 ‘너무 힘들지 않게 사는 것’이며,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월 급여는 150만원이라고 답했다.
인문계고 졸업 후 월 급여 150만원을 받으며 카페 바리스타로 일하는 또 다른 ‘고졸 청년’ B씨. ‘이 소비는 좀 줄이고, 이번엔 이것을 사고, 다음엔 저것을 산다’라는 이른바 선택권이 본인에겐 없다고 했다. 대신 ‘이걸 해야되는데, 저것도 해야되는데, 전부 할 수 없다’는 답이 늘 정해져 있는 삶이라 했다.
고졸 청년, 고졸 노동 빈곤층은 돈만 없는 것이 아니다. 대졸 청년과 비교해 고용률과 임금수준이 낮고 고용형태도 불안정하다. 노동 시간도 길다. 주 40시간 초과 노동 비중이 고졸 청년은 54.1%로 대졸 청년의 37.7%보다 16.4%포인트(p)나 높다. 돈도 없는데 시간마저 없는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진로 모색과 이른바 스펙 쌓기는 더 더욱 힘들다. 고졸 청년들에게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통한 안정적인 삶을 계획하기란 ‘대졸 청년’, ‘다른 세상 청년들’의 일일지도 모르겠다.
고졸 청년의 부모 절반가량이 중졸 이하 학력인 반면 대졸 청년은 그 비율이 20% 전후다. 가구 소득 및 자산에서도 대졸 청년 중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가구소득 1, 2분위는 12.8%, 고졸 청년은 31.5%에 달한다. 고졸 청년과 대졸 청년의 격차는 이전 세대에서 이미 판가름이 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불행하게도 이 격차는 현 세대에서 ‘노동시장에서의 격차’로 인해 더 벌어지고, 거기에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더욱 악화한다.
청년 정책들이 ‘일하지 않는 대졸 청년’ 혹은 ‘소득이 없는 대졸 청년’에 초점을 맞추면,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며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고졸 청년들을 시간과 돈 이중 가난 속으로 더 깊게 밀어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반값 대학 등록금’도 정부에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고졸 청년 A씨’에게는 뼈아플 수 있다.
고졸 노동 빈곤층이 ‘미래’를 꿈꾸어볼 수 있게, 경제적·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절실한 이유다.
‘단 3일 만이라도 돈 걱정 안 해 보고 싶다’는 고졸 청년의 ‘소원’이 이룰 수 없는 먼 꿈이 아닌, 실현 가능한 내일의 작은 계획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