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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원 공연평론가] 동명 영화나 드라마를 무대로 옮긴 뮤지컬을 마주할 때면 낯익은 반가움과 동시에 불안감이 생긴다. 그간 많은 작품이 원작 속 명장면의 나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JSA·27일까지 동숭아트센터)는 영화가 아닌 박상연의 원작소설 ‘DMZ’(1997)에 기반하고 있다. 익숙한 얘기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는 의외의 신선함을 선사한다. 제목만 남긴 채 영화의 테두리를 벗어난 ‘JSA’의 시도는 과감하고 영리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인공들의 감정 공유를 통해 감동을 이끌어냈다면 뮤지컬은 증오의 조건반사로 인한 비극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
뮤지컬은 공동경비구역의 북측 초소에서 벌어진 총격전에 대한 남한과 북한의 서로 다른 진술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총격전의 본질적인 원인에 집중하며 사건 현장의 진실을 파헤쳐나간다. 영화에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했던 중립국 수사관 베르사미는 무대 위 화자로 등장한다. 남한 병사 김수혁의 진술을 유도하는 동시에 본인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교차시킴으로써 분단의 아픔과 끝나지 않는 고통을 절절하게 그려낸다.
총격 사건의 진실과 베르사미의 정체성이라는 두 축의 이야기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역동적인 연출 속에서 시종일관 긴장된 분위기로 펼쳐진다. 하지만 베르사미 시점의 지나친 간섭은 간혹 김수혁과 오경필의 감정선 몰입을 저해해 혼란스러운 구성을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총격전의 진실에 다가가는 순간 등장하는 베르사미와 그의 아버지의 과거는 이야기의 전개를 멈추며 도드라진다.
‘JSA’는 지난해 리딩공연 등을 거쳐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본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소극장에서 선보인 쇼케이스에 비해 중극장 작품으로 확대돼 세밀한 감정선이 헐거워진 부분이 눈에 띄지만 비교적 체계적인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쳐 온 만큼 초연 이후 행보가 궁금하고 기대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