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언급된 ‘현대’는 1800년대 후반이다. 마치 ‘지금’으로 착각할 수 있게 한 인용문은 당대가 직면한 사회·정치적 문제가 ‘심각하다’고 단언한다. 문명을 뒤흔드는 근간이 ‘부의 분배에서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데 있다’는 진단 때문이다. 의회 권력에 몸을 맡긴 독점 기업, 또 정치적 부패까지 이를 거든다고 덧붙였다.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의 가장 대중적이라고 평가받는 고전이 처음 번역됐다. 전작 ‘진보와 빈곤’(1879)으로 세계적 경제학자 반열에 오른 뒤 한때 칼 마르크스만큼이나 맹렬한 추종자를 거느렸던 그의 사상을 집약한 저술로 꼽힌다. 추종자엔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도 끼어 있다. 톨스토이가 인생 후반기 25년을 열렬한 ‘조지스트’로 살게 한 바로 ‘그 책’으로 또 다른 유명세를 치렀다.
▲“토지에 중과세…전체를 위해 쓰자”
도대체 미국 경제학자의 무엇이 체제·이념이 사뭇 다른 러시아의 문호까지 흥분시켰을까. 조지 사상의 핵심은 토지공개념이다. 한마디로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다룬 게 문명의 결정적 실수란 의견을 설파한 사고틀이다. “인간은 토지 없이 살 수 없는데 이를 사유화해 현대 문명사회에 불평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경제가 번영해도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원인을 “경제발전의 과실이 모두 땅 주인에게 돌아간 탓”이라고 역설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토지사유제는 “세련된 형태의 노예제도”에 다름 아니다.
당연히 반발이 뒤따랐다. 조지에 위협을 느낀 미국 지주세력들은 그의 사상 전파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여기엔 이른바 미국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이끈 걸출한 학자들이 앞장섰다. 효과는 여실히 드러났다. 어느 순간 20세기 경제학에서 토지문제는 슬그머니 빠져버리게 된다. 이는 지금껏 조지가 주류경제학에서 외면받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1883년 출간된 책이 국내 번역되는 데 130년이 걸린 이유이기도 하다.
▲톨스토이 “사회주의식 토지국유화? 오해다”
책에는 톨스토이가 1906년에 쓴 러시아어 번역판 서문을 보는 ‘놀라운’ 재미가 있다. 마치 ‘조지를 위한 변명’ 같은 글에서 톨스토이는 조지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현실부터 개탄한다. 결정적 이유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조지의 이념을 사유재산제를 변혁하려 든다고 판단했다는 것. 바꿔 말해 조지가 사회주의적 방식의 토지국유화를 주장한 것으로 이해한, ‘무식한’ 생각들이 빚은 결과란 거다.
▲130년 간극이 무색한 현실비판
조지의 ‘토지연구’엔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겪은 절망적인 가난의 원인을 ‘토지대물림’에서 찾은 때문이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그는 인쇄공으로 근무하던 당시 신문사에 우연히 투고한 글이 톱기사로 게재되면서 일약 기자로 신분을 바꾼다. 덕분에 토지문제에 발을 디딘 채 그 이상의 영역에 걸칠 수 있었다. 공공부채와 간접세가 정부의 지출낭비와 파괴적 전쟁을 야기한다는 분석부터 실업과 과잉생산, 기술혁신, 재정 운용의 오류 등까지 광범위하게 아우른다.
그럼에도 ‘이론 따로 현실 따로란 느낌이 없다’는 것이 책을 번역한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의 평가다. 한 세기를 훌쩍 넘긴 현대사회에까지 적실성을 지니고 있는 강점이라고 했다. 굳이 경제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도 읽을 수 있게 쓴 평이함은 별도의 미덕이다.
불합리를 찌른 날카로운 진단 끝에 붙인 결말은 19세기 중·후반 이탈리아 정치지도자 주세페 마치니로 대신 세웠다. “인권을 쟁취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이기심의 깃발이 꽂혀 있는 곳이 아니라 의무감의 깃발이 꽂혀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문명을 전진시킬 힘이 바로 이 같은 정신에서 나온다는 긍정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