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신절차로 재판지연 시도 대장동 키맨들…법조계 "제도개선 나서야"

재판부 변경에 기존증거 재조사…증인신문 2주 순연
유동규 4월·김만배·남욱 5월 구속만기…석방 가능성
"다른 재판서도 시도 늘어날 것…제도 개선 나서자"
  • 등록 2022-03-02 오전 6:20:00

    수정 2022-03-02 오전 6:20:00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남욱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핵심 피고인들이 공판 갱신절차를 이용해 재판 지연에 나서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법조계에선 관련 제도의 개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등 대장동 의혹 피고인들은 지난달 24일, 재판부 변경 후 처음 열린 재판에서 간이 공판 갱신절차 거부의사를 밝혔다. 변호인들은 “(다시 증거조사를 하는) 정식 절차로 진행되길 희망한다”며 “간이로 진행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은 재판부 인적 구성의 변화가 있을 때 공판절차를 갱신하도록 하고 있다. 공판 갱신절차는 이전 공판 내용을 다시 심리하는절차를 의미한다. 하위법률인 형사소송규칙은 검사와 피고인·변호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 한해 증거기록 제시 등의 방법으로 갱신 절차를 갈음하도록 규정한다. 즉, 검찰이나 피고인 모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간이 절차가 아닌 정식 절차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간이 절차 거부 사례 드물어…양승태 재판, 갱신에만 7개월

통상의 형사재판에서 공판 갱신은 간이 절차로 진행된다. 신속한 재판을 하겠다는 재판부 요청을 검찰이나 피고인이 거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간이 절차를 거부한 사례는 지난해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 외에는 쉽게 찾기 어렵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의 경우 공판 갱신에만 무려 7개월이 소요됐다.

대장동 재판에서 재판부는 간이 절차 진행 필요성을 언급하고 수차례 협조를 부탁했지만 피고인들은 정식 절차 진행을 고수했다. 결국 피고인들의 일부 양보로 결국 기존 증인 8명 중 5명만 법정 증언 녹음 파일을 재생하는 방식으로 갱신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증인신문 일정은 2주 순연됐다. 검찰은 “오로지 재판 지연과 구속기간 도과만을 목적으로 하는 변론”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지만 대응할 방법은 사실상 전무했다.

재판 일정 순연은 구속 피고인들의 신병과도 직결된다. 현재 대장동 사건에서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인물은 유 전 본부장,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 등 3인이다. 유 전 본부장의 경우 다음 달 20일, 김씨와 남 변호사는 각각 5월 21일 구속기간이 만료된다. 별도 혐의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을 경우 이들은 구속기간 만료 이후 석방된다. 남은 증거조사 일정을 고려할 때 이 기간 안에 판결이 선고될지는 미지수다.

공판 갱신절차 이용한 재판지연 시도 많아지나

문제는 향후 다른 재판에서도 이 같은 공판 갱신절차를 이용한 재판 지연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중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구속 피고인의 경우 일단 구속 탈피가 최우선 목표인 경우가 많다”며 “정식 갱신절차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조계에선 공판 갱신절차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갱신절차가 판사들의 인사이동이 거의 없는 미국 등 해외 사법체계에 맞는 제도로서, 우리 사법체계와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한 지역 법원 소속 부장판사는 “애초 현 제도는 2년마다 재판부가 변경되는 우리 사법체계에 적합하지 않다”며 “더 이상 법관의 소송 지휘로 간이 절차를 강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 만큼 이제라도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제도 개선이 법관 인사제도, 피고인 방어권 등 다른 사법제도와도 연결되는 만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수적이라고 법조인들은 입을 모은다. 거론되는 방안 중 하나는 명확한 근거 규정을 통해 장기간 심리가 필요한 사건의 경우 재판부를 유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6년 연속 근무로 법원 안팎에서 인사 특혜 논란을 야기했던 윤종섭 부장판사의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명확한 근거 규정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제도 개선의 방향이 법원 편의주의식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새 재판부가 이전 심리 내용을 문서가 아닌 공판에서 확인하는 과정이 공판중심주의에 부합한다”며 “공판 갱신절차 개선이 필요할 수 있지만 단순히 재판부 편의 증진 목적의 제도 개선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판 갱신절차

재판부 변경시 기존에 진행한 공판절차를 이어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 기존에 진행한 공판을 다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나, 검찰과 피고인이 동의한 경우에 한해 재판부가 ‘갱신절차를 진행한다’는 식의 간단한 절차로 마무리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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