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의 뇌 앞쪽 부위에서 고주파 베타파가 나왔다. 심장박동은 분당 70회에서 120회로 급격히 증가했고, 피부전도의 상승은 놀라울 정도다. 복권에 당첨됐을 때나 마약을 흡입했을 때와 유사한 정도라는데. 도대체 왜? 이 여성은 조금 전 한 매장에서 50%가 할인된 지미추의 하이힐을 찾아냈다.
‘좋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추측이 아니다. 입증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왔다. 지갑을 열게 하고 싶으면 구매자를 흥분시키라는 얘기다. 뒤집어 말하면 소비자는 ‘조종당하고 있다’가 된다. 구매할 순간을 통제받고 선택할 제품을 강요받는다. 전제가 있다. ‘교묘하게’다. “안 사면 그만 아냐?” 정말 그럴까. 얼마 뒤 그는 상품을 끌어안고 매장을 나서고 있는데.
소비자의 의지박약? 마케터의 판매수완? 아니다. 주범은 따로 있다. 뉴로마케팅이다. 영국 신경과학자인 저자가 나서 뇌 활동과 소비행태 간 관련성을 분석하며 뉴로마케팅의 앞과 뒤를 캤다. 핵심은 이것. 설득의 대상이 더이상 마음이 아니란 거다. 뇌다. 상품을 둘러싼 마케팅이나 광고가 이젠 소비자의 뇌를 직접 ‘조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마음을 연다? 천만에 뇌를 설득해야
결론은 명확해졌다. “기억과 더불어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상품은 선호된다.”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는 얘기다. 뇌를 스캔했더니 아웃풋이 쏟아졌다. 구매버튼은 뇌에 있었다.
▲구매를 결정하는 두 가지 기억
대형마트에 산처럼 쌓여 있는 상품. 그중 하나만 골라내야 하는 소비자의 갈등은 시작됐다. 수십가지를 제시해놓고 최적을 고르라는 건데 선택폭을 넓히니 좋은 일 아니냐고? 과연 그럴까. 결과는 정반대였다. 선택을 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놓이니 소비자의 선택은 되레 위축됐다. 가장 익숙한 브랜드를 골라들고 자리를 모면하려 들더라는 거다. 수월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란다. ‘불변의 오른쪽’이란 것도 있다. 쇼핑을 할 땐 오른쪽에 진열된 물건을 선호하고, 매장에 들어서면 본능적으로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단다. 인간의 뇌는 시계방향 움직임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소비충동이란 건 의식으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자의 역설이 그렇다. 무의식, 뇌의 물리적·화학적 변화가 가동될 때 비로소 드러난다.
▲뇌에 각인되는 브랜드…구매버튼은 뇌에 있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저자의 논지대로라면 한때 풍미했던 이런 호소는 옛 추억 속의 고전이다. 뇌 과학으로 취합한 소비자에 대한 통찰만이 제품을 만드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병마개 뚜껑의 색깔, 치약 구멍의 크기, 포장지 글씨체 등 어느 하나 의도되지 않은 건 없다. 제품은 소비자의 뇌에 각인되고 뇌를 설득하도록 제작된다. 광고는 메시지가 아니다. 세계관이다.
자신의 선택에 자부심이 있는 소비자를 공략하는 방법은 더 간단하다고 했다. 스스로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다. 오늘 기분좋게 끝낸 장보기는 차단되고 강제됐으며 부추겨지고 선동된 행위다. 소비자로선 잠시도 방심할 수 없게 됐다. 그래도 ‘쇼핑을 즐긴다’는 소릴 할 수 있다면 신경이 무디거나 호사 중일 터. 이제 상황 파악이 됐는가. ‘뉴로마케팅을 제대로 알자’는 일침은 저자가 ‘병’을 준 다음 내린 ‘쓴약’이다. 쇼핑에도 열공이 필요한 시대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