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45년 자료수집이 '개인기'일 뿐?

  • 등록 2015-03-16 오전 6:16:10

    수정 2015-03-16 오전 6:16:1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부장] 서울 종로구 홍지동. ‘죽음의 언덕길’이라 부르는 상명대 입구 초입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주인장 이름을 딴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다. ‘번듯’에 방점을 찍은 덴 이유가 있다. 사연이 많았던 탓이다. 그게 뭐냐고? 곡절이 뭐든 간에 돈 안 되는 책, 도록, 자료 등을 끌어안고 반백년을 돌아다닌 인생이라고 한다면 사연은 없을 수가 없게 돼 있다. 김달진(60) 관장 얘기다.

14년 전인 2001년 종로구 평창동에 문을 연 김달진미술연구소가 시작이었다. 연구소로 커버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자 7년 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까지 열었다. 국내 최초 미술자료 전문 박물관. 하지만 이름뿐이었다. 그 이름을 지키기 위한 사투는 온전히 그만의 몫이었다. 옛 자료로 생색만 낸 게 아니었다. 수시로 인사동·사간동은 물론 전국을 이 잡듯 뒤지고 다니며 미술자료를 거둬들였다. 그렇게 수집한 자료는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출간된 단행본, 정기간행물, 학회지, 논문, 도록, 팸플릿, 신문기사스크랩과 함께 국내 근현대작가자료가 축적된 파일 등 6만여점 18톤 분량. 그런 그에게 갈수록 커지는 고통이 있었으니 보관문제였다. 이삿짐센터 ‘기피 1순위’라는 책과 종이로만 짐을 꾸려 옮겨 다닌 것도 몇 차례. 통의동, 창성동, 창전동을 전전하며 전·월세 생활을 이어갔다.

그의 수집벽은 45년을 거슬러 오른다. 고교시절 여성지에 간간이 등장했던 세계명화를 오려 모은 것부터란다. 미술에 눈을 돌린 건 1972년 국립현대미술관서 열린 ‘한국현대미술 60년’ 전을 관람한 이후. “인생의 전환점인 대사건”이었다고 회고한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새 사옥은 사재와 은행융자를 털어 마련했다. 오래된 개인주택에 김원 광장건축환경연구소장의 재능기부가 보태졌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썩 편치 않은 건 이번 이전이 뼈아픈 결정이었기 때문. 마지막 머물던 창전동에서 김 관장이 운영하던 한국미술정보센터는 그나마 유일하게 정부지원을 받던 기관. 그런데 지난해 9월 그 지원이 끊기면서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됐다. 덩달아 연구소·박물관까지 위태로워졌다. 이때 내린 결정이 평생 모은 자료를 내놓자는 거였다. 소장품 2만여점을 가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홍지동 이전은 그 끝에 타협한 행보다.

자조적인 투로 그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 호칭에 몇 가지가 있는데. 소장은 미술연구소장이라 듣는 명칭. 관장은 미술자료박물관장이라서 듣게 됐고, 사장은 잡지 ‘서울아트가이드’를 내면서 붙은 별칭이다. 회장은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장을 맡으면서….” 결국 소장님·관장님·사장님·회장님의 ‘미친 집착’이 지난 45년 동안 국내 유일무이한 ‘아카이브 스토리’를 쓸 수 있게 한 셈이다. 만약 같은 돈과 시간을 그림이나 조각에 투자했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 거다. 그 경우라면 혹여 대량의 소장품을 어느 곳에 기증했을 때도 다른 대접을 받았을 터. 독립된 전시장 마련에 ‘아무개 기증전’이란 타이틀도 내주었을 거고.

김 관장이 그의 자료 속에서 주역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학맥으로 무장한 미술계는 물론 그간의 심혈을 ‘개인기’로 취급한 관이 그를 철저히 배타적 영역 밖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1952년 전쟁통에 덕수궁미술관에서 외국작품전이 열렸다. 이 사실을 어찌 알았겠는가. 기사와 도록 덕이다. 이것이 자료의 힘이다.” 기본과 기초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품격있는’ 시대가 찾아와 이 가치의 힘을 어서 품어주길 바랄 뿐. 김 관장의 후반전 승부수는 ‘디지털’이란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다 하는 디지털이 그에겐 남은 생을 전부 걸 목표가 됐다. 염치가 있다면 “그간 고생했으니 앞으로 45년 그냥 더 가봅시다”라곤 할 수 없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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