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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횡령죄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의 상고에 대해 원심의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피고인 주모씨는 지난 2013년 1월 피해자 A씨, B씨와 약정을 맺었다.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조합 명의로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수익을 나눠갖자는 내용이었다.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 의료인이 아니어서 의료기관 개설 자격은 없었다.
주씨는 약정에 따라 2013년 3~5월 A씨로부터 2억2000만원, B씨로부터 3000만원 등 총 2억5000만원을 투자금 명목으로 송금받았다. 이들은 조합설립을 위해 조합원모집절차를 진행했고 병원 후보지를 물색했다. 그러던 중 2013년 5월 이들 3명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A씨와 B씨는 주씨에게 약정한 추가 투자금을 더 이상 지급하지 않았고 해당 사업추진은 중단됐다. 주씨는 보관하던 투자금 2억5000만원 중 2억3000만원을 2014년2월 A씨, B씨의 동의 없이 개인 빚을 갚는 데 썼다.
종전 판례상 법리에 따르면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해당 돈에 관한 위탁관계가 인정돼 피고인이 돈을 보관하는 사람으로서의 지위가 인정돼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은 원인이 의료법상 처벌대상이 되는 계약에서 출발하는 만큼 피고인의 보관자 지위가 인정되느냐가 중요한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는 자의 ‘의료기관 개설 및 운영’이라는 범죄의 실현을 위해 투자금이 전달됐으므로 해당 투자금에 대해 피고인과 피해자간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신임에 의한 위탁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피고인에게 횡령죄 성립을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횡령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어 “다만 의료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민사상 반환청구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반대로 피해자의 민사상 반환청구권이 허용된다고 해서 무조건 형사상 보호가치 있는 위탁관계에 해당하는 것 역시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