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애국보수도 트렌스젠더도…웃픈 BJ들 '인방갤'

배우 김선영의 극단 나베 신작
BJ 통해 인터넷 방송 민낯 담아
25일까지 대학로 노을소극장
  • 등록 2019-08-22 오전 12:15:00

    수정 2019-08-22 오전 12:15:00

연극 ‘인방갤’의 한 장면(사진=극단 나베).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문재인 XXX야!”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노을소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인방갤’의 한 장면. 인터넷 방송을 하던 애국보수 BJ 육만원(김용준 분)이 울분을 담아 외치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정권을 비판한다면서 정작 본인의 감정은 주체하지 못하는 육만원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다.

캐릭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중 육만원은 대표적인 극우 논객인 지만원의 패러디다. 실제로 지만원은 유튜브에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며 극우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육만원의 대사도 실제 지만원의 인터넷 방송에서 따왔다. 무대 위에서는 그저 우습기만 한 광경이 지금 인터넷 어딘가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인방갤’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은 인터넷 방송 BJ들을 무대로 소환한다. 제목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에 있는 게시판 ‘인터넷 방송 갤러리’의 줄임말에서 따왔다. 등장하는 BJ들도 각양각색이다. 아이템에 쩔쩔매는 게임 BJ와 섹시댄스로 시청자를 유혹하는 여성 BJ는 물론이고 소통을 위해 방송을 시작한 트렌스젠더 BJ까지 등장해 인터넷 방송 세계의 속살을 드러낸다.

연극 ‘인방갤’의 한 장면(사진=극단 나베).


흔히 인터넷 방송의 특징으로 ‘쌍방향 소통’을 꼽는다. 민주적인 소통이 가능한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방갤’은 ‘쌍방향 소통’을 내세운 인터넷 방송 또한 권력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이야기한다. 작품이 주목하는 것 또한 BJ와 시청자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권력관계다.

여성 BJ 미라(박다미 분)는 ‘의첸’(의상체인지를 뜻하는 인터넷 방송 용어)과 섹시댄스를 동시에 요구하는 시청자들에게 답답함을 토로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난뿐이다. 극중 인터넷 방송 ‘대통령’으로 불리는 BJ 철호(김권후 후)는 늦은 밤 딸을 깨우면 ‘별사탕’을 쏜다는 시청자들의 명령을 마지못해 따른다. 시종일관 웃음을 선사하는 연극이지만 시청자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철호의 넋두리처럼 서글픔이 느껴지는 순간도 없지 않다.

인터넷 방송을 즐겨보지 않는다면 ‘백두산’ ‘영정’ ‘건빵’ 등 낯선 단어들로 가득한 ‘인방갤’의 풍경이 생경할 것이다. 그러나 극을 보다 보면 이들이 왜 시청자들의 막무가내식 요구에 따르게 되는지에 자연스럽게 공감이 간다. BJ 철호와 ‘합방’을 하게 된 트렌스젠더 BJ 프림(박지홍 분)은 별사탕이 터지자 ‘구미 베어’ 인증 댄스로 기쁨을 표현한다. 완벽한 여자가 된 다음에 엄마랑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자 펼치는 ‘웃픈’ 몸부림이다. 알고 보면 우리의 삶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출가 이승원이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았다. 인터넷 방송에 대한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담아낸 사실적인 묘사들이 인상적이다. 인터넷 방송을 즐겨본다면 극중 캐릭터들이 어떤 BJ를 모델로 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인방갤’의 또 다른 미덕은 좁은 소극장 무대의 한계를 불식시키는 배우들의 연기다. 각자 개성이 또렷한 캐릭터의 향연으로 130분의 긴 공연시간을 지루함 없게 만든다.

‘인방갤’은 극단 나베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승원 연출의 부인이자 영화 ‘말모이’,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 등 다방면으로 활약 중인 배우 김선영이 2014년 창단한 극단이다. 그동안 ‘예술이 죽었다’ ‘두 형사 이야기’ ‘모럴 패밀리’ 등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극단 이름에서 괜한 오해는 하지 말자. 극단 나베는 ‘나누고 베푸는 극단’의 줄임말이다. 공연은 오는 25일까지.

연극 ‘인방갤’의 한 장면(사진=극단 나베).
연극 ‘인방갤’의 한 장면(사진=극단 나베).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오늘도 완벽‘샷’
  • 따끔 ㅠㅠ
  • 누가 왕인가
  • 몸풀기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