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외국문학상이 골라줘야 사본다?

  • 등록 2016-03-28 오전 6:06:00

    수정 2016-03-28 오전 6:06:0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부장] 한강(46)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잘 팔린단다. 한 인터넷서점에선 이달 중순 통계로 전월 대비 12배나 팔려나갔다는 통계를 냈다. 신간이 아니다. 2007년 출간한 장편이다. 내용이 그리 녹록하지도 않다. 작가가 작품마다 깊이 품어온 욕망·죽음·존재론이 소재를 바꿔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렇다면 갑자기 왜? 이유는 단 하나다. 올해 ‘맨부커상’의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 때문이다.

어쨌거나 좋은 일이다. 작가 개인으로나 국내 문학·출판계로나 아쉬울 게 없다. 그럼에도 썩 개운치 않은 이 뒷맛은 뭔가. 발표한 지 9년이나 된 소설, 그것도 외국의 문학상이 먼저 알아본 소설에 덤벼드는 호들갑스러운 모양새가 달갑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고 맨부커상을 폄하할 작정이겠는가. 이름만으로도 기가 죽는데. 1969년 영국의 부커사가 만든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힐 만큼 권위가 있다. 노벨문학상과 다른 점이라면, 아무런 정보 없이 한방에 발표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란 것. 13편의 후보작을 발표한 후 한달여 뒤 경쟁후보 6작품을 고르고, 다시 한달 뒤 최종수상작을 발표하는, 감질나는 형식을 취한다. 세상의 모든 소설이 수상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어소설에만 자격이 생긴다. 13편의 후보작에 든 ‘채식주의자’ 역시 영문번역본 ‘베지테리언’(Vegetarian·2015)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꿨을 일이다. 운도 따랐다. 영국 런던대 소아스에서 한국문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딴 영국인 데보라 스미스(29)를 만나 수려한 영문번역을 제대로 입은 거다.

9년 묵힌 소설에 불을 붙인 문학상의 위력은 굳이 상이라기보다 ‘외국상’이란 게 더 크다. 왜냐고? 이젠 국내의 어떤 문학상도 이만큼의 파급력을 갖지 못하니까. 그래도 이나마 읽는 게 어디냐고? 과연 그런가. 책이 소모품이 돼가는 판국에. 활자에서 멀어지는 환경이라면 어쩌다 책 한권을 샀다고 해도 읽은 거라고는 할 수 없다. 그냥 소비한 거지.

이번 ‘맨부커상’과 같은 단면은 사실 매년 10월이면 반복된다. 한국인의 노벨문학상을 향한 뜨거운 열망 말이다. 노벨상 6개 부문 중 한국인이 유독 촉을 세우는 분야는 문학상뿐이다. 그런데 촉만 세운다. 수상을 향한 그 어떤 노력도 없다. 고은·황석영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건지 물망에 오르내리는 인물은 이들뿐이고 그 이상의 어떤 작가나 작품에도 관심이 없다. 그저 때가 되면 문학서라곤 표지 한번 열어보지 못한 이들까지 나서 노벨문학상을 연호할 뿐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웃기는 코미디가 어디 있는가.

블랙코미디의 잔영이 이처럼 애잔한데 이제 한동안 세상의 주제는 AI(인공지능)로 향할 건가 보다. 철학은 아닌 듯하다. AI의 창의성과 혁신이 어디서 발원한 건가를 따질 생각은 없어 보이니까. 그간 투자 못한 현실을 비관하며 ‘비용’을 얼마나 들일지만 재고 있다. 사실 한국인의 소설판매율을 순식간에 뒤집은 맨부커상도 알파고의 고향서 왔는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시대에 굳이 활자에 갇힌 세상만 들여다보라는 얘기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저 아이들이 ‘소설이 뭐예요’를 물을 미래의 어느 때에 대비해 모범답안이나 만들어 놓을밖에. 그러면 정말 방법이 없나. 문학에도 알파고를 한번 데려온다? 소설 쓰는 알파고와 쓰기대회라도 한판 벌여야 소설을, 문학을, 책을 다시 바라보게 될 건가. 그래서 “알파고가 어디까지 읽었는지 한계를 모르겠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니 슬픈지 기쁜지 알 수가 없다” “내가 패한 것일 뿐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니다” 등 비장한 반성이 나와줘야 판을 바꿀 수 있으려나. 상상만으로도 현기증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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